[국민논단-박찬웅] 양극화 넘어 다중격차 사회로

입력 2012-08-16 18:54

대선이 다가오면서 대선 주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이슈에는 경제적 민주화와 복지가 자주 등장한다. 이는 학계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불평등을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빠른 경제성장을 경험했던 1980년대까지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은 주로 극빈층의 문제로 인식되었고, 전반적인 불평등 수준은 다른 사회에 비해 양호한 편이었다. 그러나 90년대 경제위기 이후 높아진 실업률,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주택가격 하락 등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빈곤과 불평등을 체감하게 만들었다. 경제위기 이후 불평등 현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양극화로 표현되었고, 이런 양극화 현상의 핵심은 중산층의 몰락에 따라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유층은 오히려 더 부유해진다는 진단이 포함되어 있다.

불평등을 양극화로 인식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바라보는 중요한 시각이지만, 최근 들어 불평등 현상은 양극화만으로 보기에는 다양한 측면이 나타나고 있다. 즉 주거빈곤, 근로빈곤처럼 다양한 유형의 빈곤층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문화생활이나 여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따라 문화적 빈곤 역시 중요한 빈곤 유형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빈곤이나 불평등이 단순히 한 차원이 아니라 다양한 차원에서 나타나고 있고, 따라서 학문적으로 사회정책 면에서 불평등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불평등을 다차원적으로 측정하는 개념이 필요해졌다.

이런 점에서 ‘다중격차’의 개념은 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제시한다. 다중격차의 개념은 빈곤이나 불평등을 단순히 소득만으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다차원적인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각 차원이 어떻게 결합되어 나타나는가에 주목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다중격차에 포함되는 기본적인 차원으로는 소득, 건강, 교육을 들 수 있다. 이외에 일자리, 주택이나 문화 등을 추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중격차 개념의 핵심은 불평등에 관련된 다양한 차원이 있고, 개인이나 집단에 따라서 차원별로 다른 결합 방식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중격차의 개념을 적용하더라도 사회적 지원이 가장 필요한 집단은 모든 차원에 걸쳐 일관되게 가장 어려운 상황에 있는 집단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현재 우리 사회에는 주거빈곤, 근로빈곤처럼 불평등의 차원별로 다양한 유형이 나타나고 있다. 이 경우 주목할 것은 불평등의 유형별로 빈곤에 이르는 경로가 개인이나 집단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각기 다른 경로로 빈곤에 이르는 집단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정책 면에서 중요한 것은 제공하는 복지 정책이나 노동시장 정책을 다중격차의 유형별로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이다.

예를 들어 건강은 좋지만 교육 수준이 낮고 그에 따라 일을 하지 못하거나 임금 수준이 낮기 때문에 가난한 경우, 교육이나 건강은 좋지만 다른 이유로 인해서 소득이 낮은 개인의 경우, 또한 건강, 교육 수준은 양호하지만 주거 문제로 인해 곤란을 겪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불평등을 다중격차로 인식할 때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회정책은 지나치게 소득 문제에만 집중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불평등의 문제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 다양한 빈곤의 유형을 경험하는 개인들을 사회정책 지원으로부터 제외할 위험이 있다.

소득은 여전히 불평등과 빈곤 문제의 핵심이다. 그러나 다중격차 사회의 사회정책은 소득으로 인한 불평등 이외의 다양한 유형의 불평등을 경험하는 집단을 위해 유형별 불평등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정책 다양성을 위한 첫 출발은 다중격차에 대한 사회적 인식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박찬웅 연세대 교수·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