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표현의 자유

입력 2012-08-16 18:51

칼로 두부 베듯 세상만사가 흑백으로 분명히 가려진다면 심판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법관이란 직업은 아마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갈수록 사회가 복잡해지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에 오히려 판관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되고 말았다. 삼성과 애플도 기술개발 경쟁보다는 특허 문제로 서로 싸우다 보니 엔지니어보다 오히려 변호사와 변리사만 돈을 버는 기현상이 일어나게 됐다.

대선을 앞둔 올해에도 대통령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권의 이전투구가 과거 어느 해보다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진보적인 대통령을 뽑자는 범민련 남측본부의 의견 광고가 토론 대상에 올랐다. 대법원이 반국가단체로 판단한 조직이 어떻게 그 같은 행위를 할 수 있느냐가 쟁점이었다.

간단한 논란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렵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광범위하게 인정되기 때문에 이를 제한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법률가들은 대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을 제시한다. 1918년 미국의 홈즈 대법관이 주장한 이론이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종교 등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법이 방지하고자 하는 해악이 발생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을 때’에 한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장래에 그러한 해악을 발생시킬 염려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제한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이른바 추상적 위험을 이유로 이를 제한할 경우 국민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표현의 자유는 민주정치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지만, 무제한으로 허용되지는 않는다. 우리 헌법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되며,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때에는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자유권적 기본권에 해당하기 때문에 제한을 매우 엄격하게 한 것이라 판단된다.

사실 무엇이 진리인가는 국가의 관여 없이 공개된 장소에서 자유로운 논쟁을 통하여 판명돼야 한다는 생각이 서구시민사회에서는 일찍부터 존재해 왔으며 그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시장론’이다.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논쟁 결과 진리는 살아남고 허위는 도태된다고 여겨졌다. 진리생존설이다. 이런 이론이 필요 없어도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산다면 구태여 남의 구설에 오를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선조들이 세치 혀 밑에 도끼가 들어있다고 하지 않았나 싶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