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27) 당신이라는 소실점… 시인 조말선

입력 2012-08-16 18:25


1965년 경남 김해에서 아버지 조상수(87)씨와 어머니 권명선(81)씨의 3남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이름은 말선(末先). 여자 이름치고는 범상치 않다. 굳이 뜻풀이를 하자면 ‘끝 말(末), 먼저 선(先)’이지만 ‘끝이면서 먼저’라는 해석 불가해한 작명 때문에 무던히도 속을 앓던 그는 김해 대동초등학교 6학년 때 “이름을 바꿔 달라”고 부모님을 졸라댄다. 하지만 “작명소에 가서 지어온 이름이므로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 어린 말선은 좌절한다.

특이한 이름은 그를 외롭게 만들었다. 심리적으로도 위축된다. 대동중학교를 차석으로 입학한 그는 점점 공부를 멀리하면서 일기와 잡문쓰기에 전념했고 ‘데이지’라는 가상인물에게 편지를 쓰면서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김해, 마산 등지의 백일장을 쫓아다닌 것도 이 즈음이다. 김해여고와 동아대 불문과를 졸업한 그는 결혼 후 경북 구미에서 생활하던 중 다시 문학 병이 도진다. 1990년 타향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참가한 백일장에서 장원으로 뽑혔고 시에 대한 애착은 두 아이 출산 후에도 이어졌다.

199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와 월간 ‘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그는 ‘매우 가벼운 담론’과 ‘둥근 발작’ 등 2권의 시집을 내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발휘했으나 상복은 없었다. 그러다 지난 7월, 과거 김종삼 박용래 등의 시인이 수상했던 ‘현대시학작품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 5편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미학은 ‘당신이라는 장소’에 가닿고자 하는 간절함 그 자체였다.

末先관계 사람 사이 거리 탐구

‘끝이면서 먼저’인 이름값 톡톡

“당신이라는 장소에 도달하기 위해/ 손에서 발까지 걸어갔어요/ 이런, 내 손과 내 발인 줄 몰랐는데 말이죠/ 당신 손은 언제나 내 손만한 심장을 꽉 쥐고 있더군요/ 내 발이 계속 더듬는 이유죠/ (중략)/ 당신이라는 장소에 도달하기 위해/ 막 내 오른손에 도착한 곳이 당신인가요/ 당신에게서 당신까지/ 매일 한 시간 십 분씩만 걸어갈께요”(‘손에서 발까지’ 부분)


조말선은 최근 사람이라는 장소성에 몰두하고 있다. 17년 동안 살았던 부산 구서동을 떠나 금정산이 바라다 보이는 화명동으로 이사 온 2년 전부터 사람은 그냥 사람이 아니고, 도달해야 할 어떤 장소적 의미로 새겨지기 시작했다. “낯선 동네에 오고 보니 사람 생각이 났고 멀리 있는 사람들을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지요. 사람은 장소이되 움직이는 장소라서 필요할 때마다 가까이 끌어당겨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을 화명동 낙동강변을 걸으면서 알게 되었어요.”

예전엔 산길을 걸었다면 요즘은 툭 트인 강변길을 걷는다. 매일 한 시간 십 분씩. 걸으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생각한다. 초기 시편들이 ‘나’에 집중돼 써졌다면 요즘 시편들은 ‘당신’이라는 타자에게 옮겨온 셈이다. ‘나와 당신’의 거리는 실상 끝이면서 먼저인 ‘말선(末先)’의 관계가 아니겠는가. ‘당신’ 없으면 ‘나’ 역시 시작될 수 없고 ‘나’ 없이 ‘당신’도 존재할 수 없다는 새로운 소통의 국면에 조말선은 도달해 있다. 그러나 ‘당신’에게 도착하면 ‘당신’은 없다.

“이 오물이 튀지 않게 소매 좀 걷어줘요/ 당신은 손을 쓰기 전 내게 부탁한다/ 이만큼이면 될까요/ 나는 소매 속에서 당신의 손목을 꺼내준다/ 후, 당신은 참은 숨을 쉬기 시작한다/ 코만 나왔으니 조금 더 걷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중략)/ 손쓸 수 없는 당신의 소매접기는 무한대/ 오물이 튀지 않는 지점은 조금씩 자리를 옮긴다/ 나는 당신의 소매를 한없이 풀고 있다”(‘한없이 접혀 올라가는 소매들’ 부분)

당신의 이름은 ‘말선’. ‘나’는 당신을 찾아 나서지만 당신은 없고 ‘끝이면서 먼저’인 듯 애꿎은 소매를 한없이 풀고 있다. ‘당신’이라는 장소를 탐색해 가는 불안과 소실의 감각은 ‘끝이면서 먼저’인 그 이름값 때문이지 않겠는가. 누군가 작명 한 번 잘했다 싶다.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