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임항] 목소리 잃은 환경부
입력 2012-08-15 19:31
최근까지 지속된 긴 무더위에 한강과 낙동강에는 녹조가 기승을 부렸다. ‘녹조라테’나 ‘녹조괴담’과 같은 정치적 공방도 잇따랐다. 서울시는 지난 9일 조류(藻類)주의보를 발령했다. 2000년 이후 6번째다. 한강, 특히 팔당호의 녹조는 거의 연례행사가 됐다.
그렇지만 이번에 낙동강은 양상이 달라졌다. 지난주까지 낙동강 주요 지점에서 독성이 있는 남조류 세포수도 한강보다 훨씬 많아져 한강 같았으면 조류주의보가 아닌 조류경보가 발령됐을 상황이었다. 낙동강은 조류경보제 시행 대상이 아니다. 특히 과거에 녹조가 나타나지 않았던 중류 구간에까지 남조류가 크게 번졌다. 남조류는 지난 주말 고도정수처리시설이 없는 구미광역정수장까지 위협했다.
낙동강의 남조류 창궐이 한강과 달리 민감한 정치적 이슈가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강의 경우 녹조가 나타난 북한강이나 한강 일부 구간은 4대강 사업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낙동강에는 4대강 사업에 따라 과거에 없던 8개의 보가 신설됐고, 그 후 처음 맞이한 여름에 녹조가 대규모로 번성한 것이다. 따라서 녹조의 원인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녹조의 발생 원인으로 수온, 일사량, 총인(영양염류)농도 및 물의 체류시간이 꼽힌다. 환경단체와 야당을 대표하는 김좌관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예전에 없었던 낙동강 중류의 녹조현상은 신설된 보들로 물의 체류시간이 길어진 탓”이라며 “가장 효과적 대안은 4대강 16개 보의 수문을 열어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7월 전국 강수량은 281㎜로 평년의 204㎜에 비해 오히려 38% 늘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환경부는 지난 7월 20일 장마가 끝난 이후 지난 10일까지 비가 거의 오지 않았고, 높은 기온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녹조현상의 핵심 원인이라고 반박했다.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8일까지 전국적으로 강수량은 예년의 5%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 역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기한 4대강사업 책임론에 대해 “녹조현상과 4대강사업은 무관하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거듭 ‘폭염에 따른 수온 상승’과 ‘강수량 부족’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환경부의 이런 태도는 과거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 3월 배포한 ‘정수장 조류 대응 가이드라인’이란 자료를 통해 4대강 보 건설로 인한 조류의 대량 발생 가능성을 이미 언급했다. 이 지침은 “다수의 댐과 보 건설로 하천의 체류시간이 길어지고 기후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조류의 대량증식 발생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이는 환경부가 낙동강에서 조류가 대량 증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대구, 경북지방의 수돗물 안전에 빨간 불이 켜지자 지역사회는 페놀사태의 악몽을 떠올렸다. 지난주 지방자치단체와 정수장 측은 낙동강 가동보의 수문개방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수공은 “수문을 열어도 지속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녹색연합 활동가 황인철 팀장은 “수문을 개방하면 보가 녹조의 원인임을 시인하는 형국이 되니까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공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올해 경북지방 강수량이 적어서 만약 보의 물을 더 방류했을 때 이후 비가 안 오면 취수에 필요한 수위가 확보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갈수기에도 좋은 수질의 충분한 용수를 확보하겠다는 4대강사업의 목표는 요원한 셈이다.
문제는 수량 확보를 목표로 삼는 국토해양부를 견제해야 할 수질담당 부처인 환경부가 국토부 입장을 앵무새처럼 대변했다는 점이다. 유영숙 환경부 장관은 12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꼭 필요한 용수까지도 방류를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저수량과 앞으로의 강우예상량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라고 말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