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교교회 100돌…中 대륙선교 선봉에 서다
입력 2012-08-15 20:34
한국 화교(華僑)교회가 100주년을 맞았다. 미국인 선교사 C. S. 데밍 여사와 중국 산둥성 출신 한의사 차도심(車道心)이 1912년 서울 YMCA에서 첫 중국인 집회를 연 이후 1세기가 흐른 것이다.
국내 화교교회의 중심인 한성교회는 15일 서울 정동 본당에서 여한중화(旅韓中華·‘한국의 중국인 나그네’라는 뜻)기독교 창립 100주년 기념대회 감사예배를 드렸다. 34년째 한성교회를 이끄는 유전명 목사와 영등포중화교회 유소충 목사, 인천교회 강대위 목사 등 국내 화교 목회자들과 미국·호주·대만 등 해외 사역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100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화교교회를 적극적으로 도와온 중화기독교유지재단 이사장 방지일 목사와 이만열 삼덕교회 원로목사, 양춘상 장로가 감사패를 받았다.
국내 화교교회는 100년 전 특별한 만남을 통해 태동했다. 중국에서 선교하던 부모의 영향으로 중국 선교의 뜻이 깊었던 데밍 여사는 미국에서 한국인 도이명 박사와 결혼한 뒤 1911년 한국에 왔다. 도착한 날 집수리를 하려고 사람을 불렀는데 공교롭게도 중국인 목수가 왔다. 이때 데밍 여사는 하나님이 자신을 한국으로 인도하신 이유를 깨달았다. 그녀는 얼마 뒤 자신과 마찬가지로 화교복음전파의 사명을 지닌 차도심을 만나 의기투합했다. 그들은 1912년 5월 YMCA에서 첫 예배를 드리면서 화교 복음화의 첫발을 내딛었다. 이듬해 교우들의 헌금으로 서소문에 교회를 마련했고 산둥장로회 이가풍 목사가 초대목사로 취임했다. 대만 중원대 강인규 교수는 “근대 중국교회는 서양 선교회의 원조에 의존해 유지된 반면 한국 화교교회는 설립 때부터 자립교회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화교교회는 원산과 인천, 평양에 교회를 개척하는 등 꾸준히 성장했으나 한국전쟁 때 교회가 파괴되고 목회자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55년 한국에 온 헬렌 맥클레인 선교사의 헌신적인 사역으로 재기할 수 있었다. 맥클레인 여사가 해외에서 받아온 후원금으로 58년 서울 정동에 한성교회가 재건됐고 부산, 수원, 대구, 군산 등에서 교회 개척이 이뤄졌다. 현재 국내 화교교회는 서울 2곳(정동·영등포)과 인천을 포함해 7곳에 있다.
한국전쟁 직후 8만명에 달했던 국내 화교 인구는 이후 꾸준히 줄어 현재 2만명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중국대륙에서 온 전통적인 화교 외에 동남아 등지에서 온 중국인과 중국 유학생, 조선족이 크게 늘어 화교교회가 복음을 전할 대상은 오히려 많아졌다. 유전명 목사는 “다양한 지역 출신 사람들이 참여해 국제적인 교회로 변모한 한성교회는 세계로 눈을 돌려 선교사역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교교회는 2007년부터 한국 선교사 등과 함께 ‘선교중국’ 대회를 2년마다 개최하는 등 중국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강인규 교수는 “지난 100년 역사에서 초기 화교교회와 한국교회의 관계는 그다지 긴밀하지 않았지만 다가올 100년 역사에선 화교교회와 한국교회가 함께 손잡고 ‘선교중국’을 추진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