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서영은, "당신은 지금 모험하고 있는가?"

입력 2012-08-15 11:51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모험

1983년 《먼 그대》로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서영은 선생과 수영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강릉 태생인 서 선생은 수영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분입니다. 어린 시절 매일 먼 바다를 향해 헤엄쳐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 깊숙한 곳에 해양적 정신이 있습니다. 70을 목전에 둔 지금도 한강 정도는 거뜬히 수영으로 왕복할 수 있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한강을 건너는 그거요? 아무것도 아니지요. 현해탄도 잘하면 건널 수 있어요. 물 안에 있으면 그렇게 편할 수 없어요. 호호. 어찌됐건 저는 모험을 좋아합니다. 겉은 여자인데 속은 남자라고 할 수 있지요. 아주 어렸을 때에 몸이 오그라질 정도의 긴장 속에 읽은 책이 《백경》이었어요. 선장 에이모프가 고래를 쫓는 과정에서 다리까지 잃는데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투쟁합니다. 오합지졸 선원들을 모아서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백경만을 쫓는 선장 에이모프의 이야기,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인생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의 여정입니다. 분명한 것은 모험을 하면 무언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험해야 합니다.”

선생은 66세이던 2008년, 유언장을 쓰고 말없이 산티아고로 갔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어떤 희망을 기어이 찾겠다는 욕망 하나로 40일간 그 성스럽다는 '산티아고의 길Camino de santiago'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떠나게 했을까요?

그동안 선생은 전 세계 160여 개 도시를 다녔습니다.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언제나 떠남의 자리에 뒀습니다. 그렇기에 '산티아고'가 들어왔을 때에 그저 마음에만 두지 않았습니다. 그곳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녀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언젠가는 꼭 산티아고로 떠나 보세요. 모험하세요. 모든 일을 모험으로 바꾸세요.”

물론 여기서 산티아고는 스페인의 한 지명만이 아닙니다. 미지의 세계지요. 치러 내고 감당하는 추상적인 것일 수도 있고 명확한 지점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산티아고를 향해 떠나는 것입니다. 떠나는 모험을 했을 때에만 새롭게 빚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은 모험을 '치러 냄'으로 인해 받을 상처를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부탁했습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평생 한 번도 자기 자리를 떠나 보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치러 내고 감당하는 것, 마음의 칼자루를 다 내어 주는 것은 모험입니다. 현대인의 삶 속에 서사(敍事)가 없는 것은 모험하지 않아서일 것입니다. 마음의 칼자루를 다 내어 던지는 모험을 하지 않기에 삶이 단조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평생 한 번도 모험하지 않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모험할 기회에 주저앉아 버립니다. 그리고 늘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 후회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 앞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책을 통해서 대리 만족을 얻기도 합니다. 모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나 직접 모험해야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졸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에 나오는 한비야 고은 하종강 함민복 등 대부분의 멘토들은 모험을 치러 낸 분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전혀 단조롭지 않았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말합니다.

“……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디 그 이야기 좀 들읍시다. 요 몇 년 동안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 책을 읽었을 겁니다. 모르긴 하지만 종이도 한 50톤 씹어 삼켰을 테지요. 그래서 얻어 낸 게 무엇이오?”

'그래서 얻어 낸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우리 인생을 삶으로써 얻어 낸 것이란 게? 그 얻어 낸 것에 대한 불만이 있는 자들은 반드시 모험을 감행해야 합니다. 모험을 통해 자신의 고치를 찢어야 합니다. 두렵고 힘든 순례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모든 것을 모험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 모험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길을 만날 것입니다.

글ㆍ이태형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저자, 《국민일보》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