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할린 한인 대량학살’ 추정 기록 공개 파장… 일제 강제동원 보상신청·소송 크게 늘듯
입력 2012-08-14 21:55
국가기록원이 14일 공개한 1946년 러시아 정부 보고서는 향후 한·일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귀환한 이들의 육성으로만 전해졌던 일본의 사할린 한인 학살에 대한 근거가 외국 정부의 보고서를 통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추가 조사 등을 통해 구체적인 사례가 드러날 경우 국제적인 이슈가 될 가능성도 있다.
국가기록원이 이날 공개한 보고서 초안은 한 장짜리다. 45년 당시 사할린 지역 현장을 조사한 러시아 민정국 인구조사담당자가 직접 손으로 쓴 보고서다. 이 담당자는 보고서 초안에서 사할린 에스토루 지역 거주 한인 인구의 급격한 감소 이유 중 하나로 ‘일본군국주의자의 한인 살해’를 꼽았다. 정확히 몇 명이 언제 어떻게 살해됐는지는 문서에 기록돼 있지 않지만 러시아 정부의 조사담당자가 직접 작성한 만큼 상당한 근거를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를 분석한 건국대 한혜인 교수는 “해당 보고서 초안은 러시아 정부가 사할린을 점령한 후 기록한 것으로, 전시 상황의 군 자료이고 적군 관련 정보이기 때문에 과장됐을 가능성은 있지만 인구감소 원인으로 일본군의 학살을 지목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국외대 방일권 교수는 “러시아 정부 민정국 담당자가 사할린 한인 살해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당시 비인도적인 처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증거가 나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재판이나 조사기록 등을 추가로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는 “국가기록원과 협조하여 진상조사에 착수할 것”이라며 “추가 증거자료 확보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사할린에 강제 동원된 한인 1만2000여명의 명부와 서신, 가족관계 관련 기록 공개도 향후 대일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사할린 강제동원 보상 신청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위원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사할린 강제동원 보상 신청건수는 2225건이며, 이 중 보상금 지급 결정이 난 경우는 1292건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보상 신청은 물론 대일 보상청구로까지 파장이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지난 5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기업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데 이어 대규모 강제동원 명부가 구체적으로 확인됨에 따라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 등의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유엔 차원의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제기될 수도 있다. 박선영 전 의원은 자유선진당 의원 신분이던 지난 2010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발생한 일본의 사할린 한인 학살사건에 대해 유엔이 진상조사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었다. 당시엔 큰 힘을 얻지 못했지만 일본의 학살 근거가 러시아 정부 문서를 통해 드러난 만큼 19대 국회에서 결의안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