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섭정왕과 兩虎不立
입력 2012-08-14 19:10
북한 장성택이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다. 홍콩의 명보(明報)는 ‘북한의 섭정왕 장성택이 방중했다’고 보도했다. 북한도 중국도 실질적으로 국가최고지도자급 예우를 하고 있는 장성택을 왕조시대의 섭정, 그것도 왕과 동급으로 지칭한 것이다.
섭정이란 군주국가에서 새로 즉위한 임금이 어리거나 사고 등으로 왕권 행사에 공백이 발생했을 때 임금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 또는 일을 말한다. 중국 역사에서 유명한 섭정이라면 청나라의 도르곤(혹은 다이곤)을 들 수 있다. 도르곤은 황제의 삼촌인 친왕이어서 섭정 중에서도 섭정왕으로 불렸다.
참고로 만일 황족(왕족)이 아니라 재상이 섭정을 한다면 그는 섭정승(丞)이 된다. 고려 때 원나라에 있던 강릉대군이 공민왕이 된 뒤 귀국할 때까지 나라 일을 처리한 재상 이제현이 그 예다.
도르곤은 말이 섭정이고 왕이지, 실질적인 황제였다. 아니 황제보다 더한 권력을 누렸다. 청 태조 누르하치의 14번째 아들인 그는 태조의 8번째 아들인 이복형 2대 황제 태종이 죽은 후 태종의 장남과 권력을 다투다 당시 여섯 살이었던 태종의 9남을 황제에 앉히고(세조) 섭정이 됐다. 그는 청나라의 기틀을 확고히 다지는 한편 권력을 전횡하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다. 명보는 장성택을 이 도르곤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장성택은 도르곤처럼 김정은의 삼촌이 아니다. 고모의 남편이다. 넓게 보아 김씨 일족이지 김정은과 피가 섞이지 않은, 엄밀히 말하면 남이다.
같은 아버지의 자식임에도 이복이라는 이유로 동생 김평일 등을 ‘곁가지’로 비하하면서 홀대한 게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 아닌가. 고모부라면 곁가지도 못되는 ‘딴 가지’다. 섭정의 위세에 기대 조금이라도 ‘최고의 존엄’ 김정은에게 도전하는 등 불온한 기미를 보이거나 김정은의 눈 밖에 난다면 그걸로 끝이다.
일부에서는 장성택이 이번 방중을 통해 특히 경제 측면에서 의미 있는 가시적 성과를 거둔다면 지위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군 강경파의 반격을 받아 몰락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가 성공한다 해도 위태하긴 마찬가지다. 양호불립(兩虎不立),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고 했다. 그의 권력과 지위가 쑥쑥 커지는 것을 김정은이 편한 마음으로만 볼 수 없을 것은 당연할 터. 고모부와 처조카의 궁정 내 권력다툼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TV 사극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하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