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외교 기습’… 한국, 中·日과 관계 악화 상황 틈 타 경협 가속도

입력 2012-08-14 19:02

북한이 중국·일본에 동시에 손을 내밀면서 대외관계 개선을 빠른 속도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이 일본·중국과 외교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에게 기습을 당한 셈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 후지무라 오사무 관방장관은 북한과 일본이 4년 만에 대화를 재개한다고 14일 발표했다. 후지무라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과 일본 간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정부간 협의를 재개하기 위해 오는 29일 중국 베이징에서 예비 교섭을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양측의 의제는 2차대전 당시와 광복 이후 북한 지역에서 사망한 일본인 전몰자의 유골 반환과 일본 내 유족들의 성묘 실현 등이 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후지무라 장관은 “지난주 베이징에서 열린 북·일 적십자 접촉에서 정부간 협의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있어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과 일본의 공식 대화는 지난 2008년 8월 일본인 납북자 문제 협의가 중단된 이후 4년 만이고,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는 처음이다. 일본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납북자) 문제도 회담의 의제로 삼고 싶어한다.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은 “일본인 납치 문제는 확고한 자세로 임하고 싶다”며 “납치 문제(해결)는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4년전 북한의 거부로 협의가 중단됐던 문제를 다시 제기하겠다는 것이다.

납북자 문제는 2002년 9월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평양 정상회담에서 그 존재를 인정하고 남은 가족을 일본에 귀환시킨 바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납북자 문제 해결의 대가로 북·일 수교협상과 이에 따른 대규모 전후배상을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유골 문제를 지렛대로 교섭을 재개하면서 납북자 문제에서 김정은 체제의 입장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정권 입장에서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로 정권 지지도를 끌어올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외교 관계가 극도로 나빠진 한국을 견제하는 카드로 북한을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반면 북한은 납북자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대신 유골 반환의 반대급부로 식량 지원과 홍수피해 지원 등 협력을 요청하고, 중단된 수교협상의 재개 가능성도 타진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날 중국 베이징에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이 중국과 회의를 열고 북한 나선시 경제지역과 황금평 위화도 경제 지역 개발 문제를 논의했다. 신화통신은 “양측이 두 경제지역에 공동관리위원회를 설립, 기초기반시설 건설을 가속화하고 나선시에는 전력망 설치 운영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전날 장 부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례적으로 사전 발표했다. 반면 중국 언론은 영자지 차이나데일리를 제외하고 인민일보·신화통신 등 주요 관영 매체에선 이틀째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북한과 중국 언론의 이 같은 온도차는 경제 지원 문제 등을 둘러싼 양측의 신경전을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