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채디플레이션’ 방치하면 장기침체로 간다

입력 2012-08-14 19:21

우리 경제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디플레이션이 우려되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상품·서비스 가격이 전체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에서 일견 고무적일 수 있으나 흔히 경기침체와 동반돼 경제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각별히 유의해야 할 현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0.1%를 기록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원자재 가격 하락 등이 원인이기에 하락세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5%였으나 생산자물가가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앞으로 더 떨어질 수 있다.

다만 최근 국제 곡물가가 급등세를 보이고 있어 작금의 물가하락 기조에 제동을 걸 것이다. 문제는 물가 하락에 따른 실질금리의 상승이다. 한은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하한 후 금융권의 지표금리가 하락하고 있으나 물가 변동 폭을 뺀 가계의 실질 이자 부담은 더 커져 부채디플레이션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부채디플레이션은 물가 하락으로 실질금리(명목금리-물가상승률)가 상승하면 ‘채무부담 확대→담보자산 처분→자산가치 하락→물가 하락→실질금리 상승→채무부담 확대’로 나타나는 악순환 현상이다. 지난달 양도성예금증서(CD)의 실질금리는 연 1.84%로 4년반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올 1월 CD 실질금리 0.15%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기준금리 하락으로 명목금리도 낮춰졌으나 물가가 더 많이 내려간 탓이다. 실질금리 증가로 가계의 실질이자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가계는 담보자산을 처분해 빚을 갚으려고 하지만 이 경우 한꺼번에 매물이 쏟아져 헐값 매각을 피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물가 하락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올 1∼7월 수도권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8% 떨어졌다. 이처럼 자산가치가 이미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가계의 소비여력이 급격히 줄고 있는 데다 담보대출에 대한 실질금리 증가로 인한 금융비용 압박까지 겹치고 있어 소비 위축은 피하기 어렵다. 소비 위축은 경기침체를 가중시키고 이는 다시 기업의 투자 위축과 더불어 물가 하락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퇴행적 디플레이션 소용돌이(deflationary spiral)를 고착화시킬 것이다.

1990년대 들어 거품경제 붕괴 후 나타난 일본 장기 불황의 시작이 바로 그 같은 모습이었다. 부채디플레이션이 장기 불황으로 빠지는 통로였던 것이다. 부동산 거래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자산가치의 연착륙을 도모하는 한편 기준금리를 낮춰 금융 부담을 완화하면서 담보자산 처분이 단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아울러 서비스산업 위주의 내수 활성화도 동반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