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 방한 추진 20년 小史… DJ 가장 의욕, 정치 변수로 성사안돼

입력 2012-08-14 19:04


일왕 방한 문제는 1988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20년 넘게 잊을 만하면 불거져 나오는 한·일 외교의 단골 메뉴였다. 노 전 대통령 이래 역대 대통령들은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일왕 방한을 제안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

일왕 방한에 가장 의욕을 보였던 대통령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한·일 과거사 문제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일왕 방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이를 공식 제안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직후인 98년 1월 일본이 일방적으로 한·일 어업협정을 파기하면서 없던 일로 됐다. 물 건너가는 듯했던 일왕 방한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재추진됐지만 이번에도 일본 정부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김 전 대통령 못지않게 이 문제에 열성적이었다. 이 대통령은 2008년 4월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왕 방한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2009년 9월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시기를 강제병합 100주년인 2010년으로 못 박아 방한을 요청했다.

하지만 양국 여론은 이 대통령의 열정과 달리 차가웠다. 백범 김구 선생의 손자인 김양 국가보훈처장은 2010년 1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일왕 방한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단체는 일왕 방한 반대 집회를 잇달아 열었다. 일본 내부에서도 방한 시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될 과거사에 대한 사죄 발언에 대해 거북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커지면서 가장 최근 있었던 일왕 방한 추진은 없던 일로 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엔 일왕 대신 왕세자의 방한을 두고 한·일 정부 사이에서 물밑 협상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군사정부와의 차별성을 위해 일왕 방한을 추진했지만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불거지면서 성사되지 않았다.

궁합이 맞지 않았던 한·일과 달리 아키히토 일왕은 92년 중국을 방문했다. 중·일 수교 20주년을 맞아 난징을 방문해 과거사에 대한 유감의 뜻을 표했다.

양국간 수많은 전제조건이 깔려있어 성사되기 쉽지 않았던 일왕 방한은 14일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사실상 재추진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독도나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단시일 내에 풀릴 가능성이 적다”며 “양국 관계가 정상화되기 전에는 일왕 방한 문제는 거론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