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먼 연기 서울 한복판 뒤덮어… ‘숭례문 악몽’에 철렁

입력 2012-08-14 00:34


국립현대미술관 건축 현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공사장 인부 4명이 숨지고 2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3일 오전 11시23분쯤 서울 소격동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공사현장 지하 2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현장 내부를 태우고 1시간20여분 만에 진화됐다. 하지만 화재 발생 현장에 있던 인부들은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해 김모(50)씨 등 4명이 숨지고, 진모(55)씨 등 23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사망자들은 모두 질식사했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강북삼성병원·을지백병원 등 병원 5곳으로 이송됐다. 이들 외에 타워크레인 작업자 1명도 지상으로 대피하던 중 20여m 아래로 추락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중태다.

◇하늘을 가득 메운 검은 연기=화재로 시커먼 연기가 경복궁 주변을 뒤덮어 경내를 관람하던 관광객들이 일제히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매캐한 연기는 서울지방경찰청에서도 느낄 정도로 세종로 등 시내 중심가에 퍼졌다. 화재 현장 맞은편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현석(22)씨는 “새까만 연기가 하늘을 가득 메웠고 의식을 잃은 인부가 동료들에게 들려 현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며 “온몸이 까맣게 그을린 상태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다른 목격자는 “새까만 먹구름이 몰려오는 줄 알고 깜짝 놀라 자세히 봤더니 연기였다”며 “2008년 숭례문 화재에 이어 이번엔 경복궁이 잿더미가 되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전기 합선이나 용접 작업 과정에서 일어난 불꽃이 인화성 물질에 튀어 불이 났을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원인을 조사 중이다. 화재가 발생한 공사장 지하 2층에는 각종 페인트와 우레탄 등 유독가스를 발생시키는 화학물질이 쌓여 있어 피해가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소방재난관리본부 관계자는 “우레탄으로 방수·단열작업을 하다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실내에는 스티로폼과 샌드위치 패널 등 불이 잘 붙는 자재가 널려 있어 진화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리한 공기단축’ 인재인가(人災)=지하 2층 공사장 현장에 대피로는 있었지만 화재발생 시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지하에서 화재가 발생한 데다 내부가 검은 연기로 가득 차 현장 인부들은 대피로를 찾기가 힘든 상태였다. 종로소방서 관계자는 “화재 현장이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매연이 가득 차고 화염이 거세 (방화복을 입은) 소방관조차 진입하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건물 구조가 미로 같은 데다 군데군데 자재가 쌓여 있어 구조작업이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또 면적이 3만여㎡에 이르는 지하 3개 층에 소화기 외에 별다른 소방장비는 설치돼 있지 않았고, 스프링클러를 비롯한 소방시설은 아직 시공 중이었다는 게 소방당국의 설명이다. 지난해 11월 공사를 시작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부지 2만7303㎡, 전체면적 5만2627㎡에 지하 3층 규모로 GS건설이 시공을 맡아 내년 2월 개관을 목표로 공사를 해왔다. 일각에선 무리하게 공기를 앞당기다 사고가 발생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현장 공사 관계자는 “기간을 앞당기는 공사를 ‘돌관공사’라고 하는데 이 공사가 대표적인 돌관공사였다”며 “현 대통령 임기 내에 공사를 끝내야 한다는 것은 비공식적으로 다 알려진 얘기”라고 귀띔했다. 이에 따라 현장관리 미흡과 소방시설 미비, 무리한 공기단축이 빚은 인재(人災)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사고수습을 위해 미술관에 건설사 소방방재청, 경찰청 등 유관기관으로 구성된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설치했다. 종로경찰서는 시공업체 관계자와 현장 근로자들을 상대로 화재 원인과 과실 여부 등을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인화물질이 현장에 많았는데도 용접작업이 이뤄진 점으로 미뤄 공사수칙을 지키지 않았거나, 무리하게 공기를 앞당기기 위해 위험한 작업을 한꺼번에 진행하려다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