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국 친구들과 함께 건강한 꿈” ‘아시아 태평양 혈우병 캠프’ 참가 어린이들 즐거운 시간

입력 2012-08-13 17:37


“엔지니어가 돼서 사람들이 좀더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또박또박 써 내려간 한 페이지 남짓의 글에는 혈우병을 앓고 있는 김호진(13·가명) 어린이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런던올림픽이 대망의 막을 올리던 지난달 27일 희귀질환인 혈우병을 앓고 있는 호진이는 경기도 화성시에서 아시아 태평양 6개국의 손님들이 모여 열린, 그들만의 ‘작은 올림픽’인 제4회 아시아 태평양 혈우병 캠프에 참석했다.

호진이를 포함해 캠프에 참가한 모든 환자들은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창작물로 표현하는 ‘Factor in the Future’ 콘테스트를 통해 선발됐다. 2012년 ‘세계 혈우병의 날’의 테마인 ‘Factor in the Future’는 더 나은 치료 및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혈우병 환자들의 미래에 희망을 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느 또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꿈꾸는 아이들이지만 이들의 꿈은 조금 더 간절하다. 앉아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치과의사를 꿈꾸는 어린이, 소방관이 돼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용감하게 구해 주고 싶다는 어린이 등 크레파스로 꼼꼼하게 그린 그림이나 또박또박 글로 적은 작품 등을 통해 각자의 꿈과 소망을 담았다.

혈우병은 혈액 응고인자의 결핍 또는 이상으로 출혈이 일어나면 지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희귀질환이다. 혈우병은 혈액응고 제8인자가 결핍돼 발생하는 혈우병 A와 혈액응고 제9인자가 결핍돼 나타나는 혈우병 B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세계혈우연맹(WFH)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혈우병 A환자는 약 40만 명으로 전체 혈우병 환자의 약 85%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25%만이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우병 환자들은 정기적으로 응고 인자를 투여함으로써 출혈과 관절 손상을 예방해야 한다. 자가 주사를 통해 응고 인자를 투여하는 일은 성인 환자들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호진이는 12살 때부터 부모님 도움 없이 자가 주사를 시작했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자가 주사를 시작하며 호진이는 한층 더 성숙해졌다.

아시아 태평양 혈우병 캠프에 참여하게 된 것도 호진이에게는 또 한 번의 용기가 필요했다. 호진이는 평소 갈고 닦은 영어실력을 발휘해 뉴질랜드에서 온 환자와 친구가 됐다. 캠프 2일 째 진행된 수원 아마추어 축구연합팀과의 친선경기 덕분이었다. 평소 부모님의 우려 때문에 마음껏 뛰어놀기 어려웠지만 이날만큼은 새로 사귄 해외 친구들과 함께 축구공도 마음껏 차며 쏟아지는 무더위 속에서도 더운 줄 모르고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 런던 올림픽 축구 경기도 같이 응원하고 싶은데 2박 3일이 너무 짧게 느껴져요”라며 아쉬워했다.

실제 혈우병 치료 수준은 아시아 국가에 따라 크게 다르다. 대만·뉴질랜드와 같은 선진국에서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아 비교적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의 경우 많은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캠프에서 아시아 지역의 혈우병 치료 현황에 대한 발표를 맡은 유철우 을지대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는 “국내 혈우병의 적절하고 효율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지원을 기반으로 한 각 지역의 혈우병치료센터가 중심이 되는 치료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혈우병 환자단체 한국코헴회 정식 등록 환자 기준으로 2100여명의 혈우병 환자가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김태일 한국코헴회 사무국장은 “이번 캠프가 우수한 혈우병 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대만·뉴질랜드와 함께 더 나은 치료 환경을 위해 논의하는 시간이 된 것 같아 그 의미를 더한다”며 “캠프를 통해 혈우병 환자들이 질병과 주위 편견을 뛰어넘어 꿈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박주호 쿠키건강 기자 epi0212@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