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 아프게 놨다” 폭언 폭행… 병원 진상환자 골머리
입력 2012-08-13 17:25
의사의 진료에 만족하지 못했다며 진료실 벽을 발로 차고 기물을 훼손하는 환자들, 험한 욕설은 물론이고 난폭한 행동으로 주변에 위화감을 주는 몇몇 환자들로 인해 의료진이 몸살을 앓고 있다.
환자들은 주사 바늘을 꽂은 부위가 아프다거나 붕대를 감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사나 간호사에게 폭언을 쏟아 붓고 폭행을 일삼기도 한다. 진료실과 입원실에서 ‘생떼’를 부리거나 만취한 채 응급실을 찾는 주폭(酒暴) 환자들의 진료 방해는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의료진들은 이처럼 자신이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는 상황이 돼도 진료를 거부하기 어렵다. 의료법 ‘진료거부 금지’ 조항에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시행규칙에는 ‘정당한 사유’에 대한 부연 설명이 없기 때문에 진료거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사유를 의료진이 밝혀야 한다. 현실적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서울의 A대학병원에서는 외과 환자들이 입원한 6인실 병실에서 입원환자 중 한 명이 수액줄을 뽑고 주사 바늘로 간호사를 위협하는 일이 발생했다. 주사 바늘을 꽂은 부위가 아프다는 것이 이유였다. 수액줄 끝에 매달린 바늘을 휘둘러 옆 병상에 있던 다른 환자의 보호자와 간호사 1명이 상처를 입었다. 환자의 난동은 이렇게 끝나는 듯 했지만 이내 의사를 불러오라며 고성을 지르고 욕을 했다. 병실에 있던 다른 환자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병실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병원 보안팀이 올라와 환자를 제지하고 흥분을 가라앉히기까지 그 층에 있던 환자와 간호사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문제는 이 환자의 행동이 퇴원하는 날까지 지속됐다는 점이다. 병원은 적정 진료를 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해당 환자의 행동을 문제 삼을 수도, 강제로 1인실로 옮기거나 퇴원시킬 수도 없었다.
외래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진료 대기시간 지연이나 의사의 설명이 충분하지 못하다며 진료실 벽을 발로 차고 의사에게 폭언하는 일은 부지기수다. 환자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한 의사는 외래 진료 예약에 해당 환자의 이름이 있으면 겁부터 난다고 했다. 그는 “환자가 진료에 불만이 있을 수는 있지만 항의하는 과정이 폭행이라는 것이 문제다”며 “대한민국 의사들은 어떠한 상황이 돼도 진료를 해야 한다. 환자한테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욕을 듣고 맞아도 예외는 없다”고 말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관계자는 “병원 안에서 이뤄지는 환자들의 돌출 행동에 의료진과 병원 노동자들이 노출돼 있지만 이를 규제할 방법은 없다”면서 “진료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상습적으로 일삼는 환자에게 경고를 주고 그래도 반복되면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진료거부를 논의하기 앞서 의료진에게 자율적인 진료거부권한을 줬을 때 발생할 문제점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에이즈 같은 특정 질병 환자의 진료를 거부하거나 병원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된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우려가 있다”며 “모든 국민이 적정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권한이 보장돼 있어야 자율적인 진료거부도 논의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김성지 쿠키건강 기자 ohappy@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