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인문학] 종교의 자유와 관용을 설파한 철학자 존 로크 (下)
입력 2012-08-13 17:57
“인간 구원은 신의 영역… 인간권력의 신앙 강요 안된다”
‘관용에 관한 편지’는 1689년 출판된 지 몇 달 만에 재판을 찍을 정도로 잘 팔렸다. 이 소책자가 주목을 받자, 1690년 4월 영국 고교회 성직자 프로스트(Jonas Proast)가 익명으로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종교적 관용과 자유주의에 대해 반대했다. 로크는 1690년 여름 ‘관용에 관한 두 번째 편지’를 작성해 반박했다. 이때 로크는 필안드로푸스( Philanthropus)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인간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이다. 1691년 2월에 프로스트도 필로그리스투스(Philochristus)라는 가명을 사용해 로크를 다시 비판했다. 필로그리스투스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라는 뜻이다. 1692년 6월에 로크는 장문의 ‘관용에 관한 세 번째 편지’를 써서 다시 반박했다.
인간을 사랑하는 자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 사이의 논쟁이 벌어진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무엇보다 로크가 주장하는 ‘관용’ 때문이었다. 프로스트는 잘못된 종교를 억누르기 위해서는 관용이 아니라 강제적인 힘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제적인 힘은 사람들에게 신앙심을 고취시킬 수 있고, 올바른 신앙을 갖도록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로크는 그런 비관용적인 강제적인 힘이나 형법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인간의 영혼은 자유로운 것이라, 결코 강제적 힘에 의해 굴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관용’이 중요하다.
로크는 ‘관용에 관한 편지’에서 관용은 ‘참된 교회를 구별하는 가장 분명한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어째서 관용이 그런 기준이 될까? 관용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국 근대 정치사를 보면, 종교라는 미명하에, 그리고 교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이 잘려 나가고, 불에 태워졌다. 처음에는 구교와 신교 사이에 그리고 신교 사이에서도 교리가 다르다고 상대방을 고문하고, 고통스럽게 죽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종교가 독단에 빠지면, 바늘 하나 꽂을 틈도 없을 정도로 잔혹하고 무자비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로크는 내심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디로 갔는가? 도대체 종교의 관용은 무엇이란 말인가?
로크는 영국 역사에서 종교의 미명하에 벌어진 참혹한 일들을 경험했고, 목격했다. 그는 그러한 일들이 그리스도의 사랑과는 무관하며, 다 인간의 권력욕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았다. 영국의 국왕들은 교회의 우두머리를 자처하며 인간의 종교적 양심과 자유를 억압해 왔다. 이에 대해 로크는 국가와 교회를 구분하며 서로 할 일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국가는 오로지 생명, 자유, 건강, 토지, 돈 등 시민의 재산을 지키고 증식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이다. 국가의 세속적 통치에 개인의 영혼 구원은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교회의 일이다. 교회는 영혼의 구원을 목적으로 하나님을 공적으로 섬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인간들의 자유로운 사회이다. 국가를 다스리는 세속적 통치자가 인간의 내면과 영혼까지 간섭하고 강제하는 것은 월권이다. 세속적 통치자인 국왕이 종교의 수장이 되어서 자신이 믿는 신앙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왕이 가톨릭 신자이면 국민도 가톨릭 신자가 되어야 하고, 왕이 영국 국교회 수장이면 국민이 자신의 양심과 달리 국교회 신자가 되어야 하는 일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영혼구원의 문제는 신의 영역이다. 자신의 권력으로 일방적으로 자신이 믿는 신앙을 강요하는 것은 신에 대해 참람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로크가 볼 때 인간의 영혼은 자유롭다. 개인은 각자의 이성과 양심의 명령에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강제적인 권력에 의해 마지못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신앙이 아니다. 교회는 교회법으로 정한 신앙을 강요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해서도 안 된다. 무력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면까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자유롭고 자발적인 사람들의 모임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교회법을 위반하는 사람들에 대해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로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한다.
“어떤 금지가 영혼 깊숙이 자리 잡지 못하고, 양심의 전적인 동의를 구하지 못한 채, 어떤 것들을 단지 겉으로만 고백하고 준수하게끔 한다면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교회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의무를 다하도록 할 수 있는 무기는 훈계, 권고, 충고입니다.”
로크에 따르면, 교회가 행사할 수 있는 힘은 타인의 오류를 지적하고 끝까지 권면하는 길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이 스스로 잘못된 신앙으로부터 돌아서게 할 수밖에 없다. 로크는 이렇게 관용을 주장하면서도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되는 두 대상을 언급한다. 그 하나는 무신론이며, 다른 하나는 로마 가톨릭이다. 무신론자는 사회를 묶어 주는 맹세나 서약 등을 하지 않는 자들이기에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면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기초가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종교를 박해하거나 괴롭히는 가톨릭교도들이 종교에 대한 자유를 갖는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관용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데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의 두 대상 이외에 이단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가? 로크는 이단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그는 루터파, 칼뱅파, 항명파, 재세레파, 그 밖의 종파들이 서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자신의 교리와 다르다고, 다른 종파들을 이단으로 분리하고 배척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묻는다. 그에 의하면 이단은 “성서를 유일한 기초로 삼았으면서, 또 다른 것, 곧 성서의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명제들을 신앙의 기초”로 삼아 ‘분리’를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이 정의에 따라 그는 성서 이외의 근거를 가지고 자신 만이 옳다고 믿고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고 분리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이단’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종파 분리도 이단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종파 분리는 하나님에 대한 예배나 교회치리에 필수적이지 않은 이유를 가지고 다른 종파를 배척하기 때문이다. 로크는 섣불리 다른 그리스도인을 ‘이단’과 ‘종파 분리’로 낙인찍지 말 것을 경고한다.
“저는 한마디로 말합니다. 성서의 분명한 구절들을 통해 신성한 말씀이 말한 그 어떠한 것도 부정하지 않는 사람들, 거룩한 문서에 명확하게 포함되어 있지 않은 그 어떤 것 때문에 분리를 만들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그리스도교라는 이름의 그 어떤 종파에게 나쁜 소리를 듣고, 그 일부이거나 전부이거나 간에, 그 종파에게 참된 그리스도교에게서 벗어났다고 선언되더라도 결코 이단자나 종파분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로크의 관용론은 자신의 종교가 정통파라고 고집하는 자들에게는 불만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종교 관용 문제로 고심했다. 로크는 생애 말년인 1695년에 자신의 신학적 입장이 담긴 ‘기독교의 합리성’이라는 책을 익명으로 발간했다. 이신론의 영향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러나 로크는 이신론자들과 달리 초자연적인 계시를 인정했고, 그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기독교의 진리라 하더라도 강제에 의한 수긍이 아니라, 관용을 가지고 이성을 통해 영혼 내면으로부터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크는 1704년 10월 28일에 죽었다. 그는 죽은 뒤 하이레이버 교구 교회에 묻혔다.
그가 쓴 관용에 관한 네 번째 편지는 유고로 출판되었다. 로크는 기독교인들 사이의 상호 관용을 참된 교회의 기준으로 옹호했다. 그가 옹호한 종교적 관용은 미국의 헌법 초안 속에도 반영이 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자유주의 국가에서 보장되고 있다. 국가 권력으로 강제적으로 신앙을 주입하려는 시도는 사라졌다. 만약 로크가 주장하는 ‘관용’이 없다면, 인류는 아직도 종교적 진리를 가장한 독단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