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영석] 이미지와 환상에서 벗어나기
입력 2012-08-13 18:29
“미디어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붙잡기 위해 인기스타나 신화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서 각 당의 예비후보들이 유권자들에게 각자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이른바 ‘이미지 정치’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한 것이다. 최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SBS의 ‘힐링캠프’에 출연한 후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이 문제가 대선 정국의 주요 이슈로 부각되었다.
안 원장은 이미지 메이킹 전략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 젊은이들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주고 새로운 희망을 말하는 ‘청춘콘서트’나 강연은 그가 뛰어난 감성적 설득가임을 보여준다. 그는 영웅 신화에 목말라 있던 우리 사회 젊은이들의 우상이자 사회적 신화로까지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가 이런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미디어가 만들어 낸 이미지 메이킹의 덕을 많이 봤다. 이번의 ‘힐링캠프’ 사례는 텔레비전의 오락물 프로그램이 정치후보자들의 이미지 메이킹에 어떻게 일조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양자 대결 구도 하의 지지율 면에서 박근혜 후보를 능가하기 시작했다.
이미지(image)는 어떤 대상이나 사람의 자연스럽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조작되고 만들어진 허상이라는 부정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겉으로만 진짜같이 보일뿐 실제로는 가짜라는 것이다. 특히 현대와 같이 영상매체가 광범위하게 보급된 시대는 이 가짜의 이미지가 진짜 현실을 압도하기 때문에 일반 대중은 가짜의 이미지에 쉽게 속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대니얼 부어스틴은 이런 현상을 ‘유사사건(pseudo-even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유사사건이란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사회적 사건이 아니라 언론이나 영상매체에 보도되거나 소개를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인위적 사건들을 말한다. 어떤 대상의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되고 연출되어 만들어진 가짜의 사건들이라는 것이다.
미디어 노출을 주목적으로 하는 이러한 인위적 사건들은 기자회견, 인터뷰, 오락프로그램, 기획물, 시상식, 사회 공익적 행사 등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세칭 ‘언론플레이’의 모든 형태를 망라한다.
여러 유사사건 중에서 특히 경계해야 할 분야로 방송의 연예 오락 프로그램을 통한 정치인 이미지 메이킹 작업을 꼽는다. 다른 영역에 비해 오락이나 연예 분야는 정치적 의도성이 없는 것으로 가정한다. 이런 심리적 무방비 상태 때문에 프로그램 속에 나타나는 특정 후보의 인간적 측면에 감동받기 쉽다. 모든 것이 최대의 극적효과를 위해 치밀하게 사전 계획되었음에도 일반 시청자들은 프로그램 속의 자연스러워 보이는 모습에 쉽게 감동을 받는 것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강한 호감이나 긍정적 이미지는 한번 형성되면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정보는 이미 갖고 있는 이미지에 일치하도록 해석되며 반대의 정보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특정 후보를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 그와 관련된 다른 정보들은 그것에 맞추어 긍정적으로 해석된다.
이런 긍정적 이미지는 대상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만들어 준다. 현대와 같이 매우 복잡하고 분화된 사회에서는 특정 분야에 능력이 있다고 해서 다른 분야에도 그런 소질을 지녔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특정 후보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는 그가 다른 분야에도 능력이 있을 것으로 믿게 만든다. 이른바 ‘후광효과(halo effect)’를 유발한다. 감성이 이성을 지배함으로써 특정 후보에 대한 비판적 생각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미디어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붙잡기 위해 인기 스타나 신화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비판의식을 지닌 깨어 있는 공중만이 본질이 아닌 이런 이미지와 환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김영석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