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안녕하십니까] 오강섭 대한불안의학회 이사장 “불안하면 창피하다는 편견 병 키워”

입력 2012-08-12 19:41


대한불안의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오강섭 성균관대 의대 정신과 교수(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는 “불안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흔하게 나타나는 정신적 증상”이라고 설명했다. 감기에 걸렸을 때 열이 오르듯, 정신의 질병은 ‘불안’이라는 증상으로 맨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불안장애는 가장 흔한 정신질환 중 하나이다. 9일 오 교수에게 불안장애에 대해 들었다.

-불안장애는 얼마나 흔한 질병인가.

“100명 중 9명 정도가 평생 한번 이상 불안장애를 겪는다면, 굉장히 높은 비율이다. 미국의 경우 사회공포증(대인공포증)은 12∼13% 수준인 반면, 우리나라는 0.4%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환자가 숨어 있다고 판단된다. 외국의 것을 그대로 번역한 진단도구가 한국인 환자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다. 1990년대 1200명을 대상으로 사회공포증 설문조사를 한 결과 0%가 나온 적도 있었다.”

-불안장애 치료의 가장 큰 장애물은 환자를 제때 찾아내는 일인가.

“미국에서 공황발작을 몇 차례 일으킨 친구가 있는데 응급실에 가서 자기공명영상(MRI)을 두세 번 찍고 온갖 검사를 받았다고 하더라. 결국 마지막에 정신과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때까지 쓴 돈이 8만 달러(약 9000만원)였다. 제때 발견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가 그만큼 어려운 거다. 그나마 공황장애는 호흡곤란, 현기증 같은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니까 병원에 오긴 한다. 다른 불안장애, 이를테면 대인공포증 같은 경우는 수줍거나 내성적인 성격이라고만 생각하고 병을 키운다.”

-불안한 사람은 나약하다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불안은 창피한 것,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있다. 그래서 장년 이후 환자들은 불안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누구나 생활 속의 불안이 있다. 또 인간 존재가 갖는 철학적이고 실존적인 불안이 있지 않느냐. 모든 인간에게 정상적인 불안이 있다. 그걸 받아들이고 표현해야 한다.”

-정상적인 불안과 병적인 불안의 차이는 무엇인가.

“전화공포가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전화 받는 걸 피하다가 직장생활에 문제가 생겼다면 병적인 불안이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느냐’가 기준이다. 불안이 정상적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면 꼭 병원에 오길 권한다. 불안장애 자체로는 자살률이 높지 않다. 하지만 불안한 사람들은 약물이나 알코올에 의지해서 불안을 잊으려다가 약물중독, 알코올중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위험해질 수 있다.”

-불안장애 중 가장 발병 빈도가 높은 질병은 무엇인가.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대규모 역학연구를 한 결과 사회공포증의 평생 유병률(평생 한 번 이상 발병하는 비율)이 13.3%라는 결과가 나와 많은 전문가들이 놀랐다. 이게 불안장애 중 가장 빈도가 높다. 한국은 유병률이 0.5%(2011년)인데 미국이 한국의 27배나 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한국의 사회공포증 환자도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을 거다. 단순하게 말해 사회공포증은 ‘남이 나를 나쁘게 보지 않을까’에 대한 두려움이다. 환자 중에는 면접을 기다리다 도망 나온 사람도 있었다. 면접관의 평가에 대해 극단적인 공포를 느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데이트를 피하고 승진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평균 연봉이 낮고 결혼도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 오랫동안 전문가들조차 이게 병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치료를 받으면 완치되는 건가.

“정확한 진단을 받고 상담치료 혹은 약물처방을 받으면 70∼80%는 치료가 된다. 강북삼성병원이 1982년부터 운영해 오고 있는 ‘대인공포 집단 치료’ 프로그램의 치료율이 80%가 넘는다. 물론 재발하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치료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합병증이 생긴 경우이다. 불안장애의 하나인 강박장애의 경우 발병 후 평균 7.5년이 지나야 치료를 받는다는 보고가 있다. 범불안장애도 환자 3분의 1 정도만 발병한 해에 정신과를 찾고 나머지는 평균 10년쯤 병이 진행된 뒤에야 진료를 받는다. 모든 병이 그렇듯 초기에 개입해야 완치된다.”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