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삐 풀린 레임덕 물가, 정부 구경만 하나

입력 2012-08-12 18:40

물가가 레임덕 현상을 보이고 있다. 폭염으로 시금치 등 각종 채소 가격이 급등한데 이어 라면, 햇반, 사이다, 콜라, 두유, 맥주 등 가공식품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과자도 가격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농심은 오늘부터 새우깡 가격을 900원에서 1000원으로 11.1% 올리는 등 3개 제품 가격을 올리기로 했다. 농심은 지난해 5월에도 새우깡 7.7% 등 4개 제품 가격을 올렸다. 불과 1년여 만에 가격을 또 올리는 것이다.

장바구니물가뿐이 아니다. 지난주 전기요금이 평균 4.9% 올랐고, 국내선 항공요금도 줄줄이 인상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지구촌 가뭄에 따른 국제곡물가 상승이 몇 개월 시차를 두고 반영돼 추석과 김장철이 다가올수록 국내 물가 상승 압박이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업체들은 국제곡물가와 국제유가 상승 때문에 소비자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물가관리로 지난해 가격을 인상하려다 못 올려 일부 업체는 경영압박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원재료 비중이 미미한데도 원가 상승을 빌미로 제품 가격을 대폭 올려 폭리를 취하거나 원가인상 요인이 없는데도 덩달아 가격인상 러시에 편승한다면 결국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기업을 영속적으로 운영해 나가려면 손쉽게 소비자에게 가격 부담을 떠넘길 게 아니라 원가절감 노력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물가 고삐가 풀렸는데도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 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업체들을 윽박지르며 물가관리에 나서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1.5% 올라 1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방심해선 안 된다. 물가지표가 낮게 나온 것은 지난해 7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4.5%로 워낙 높아 기저효과가 있었던 데다 올해부터 본격 시행된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등이 물가를 끌어내린 착시효과가 큰 몫을 했다. 일반 가계가 느끼는 체감물가는 여전히 높다. 경기침체로 지갑은 얇아지는데 물가마저 오른다면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정권 말이라고 수수방관할 게 아니라 업체들의 편법·불법 가격 인상은 없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업체들 간의 가격인상 담합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또한 가격인상 요인이 있더라도 가격 조정 시기를 적절히 분산시켜 가계가 받는 물가 충격을 덜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밀·옥수수·콩 등의 국내 자급률이 2∼9%에 불과한 우리로선 지구촌 이상기후 등에 따른 국제곡물가 상승이 국내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만큼 중장기적인 애그플레이션(농산물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