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조각가가 빚은 인생 드라마… 최태훈 ‘투명인간’ 주제 개인전

입력 2012-08-12 18:04


스테인리스 스틸과 빛을 결합시키는 조각가 최태훈(47)은 늘 유쾌하다. 목소리가 크고 붙임성도 좋다. 하지만 그의 호방한 너털웃음은 그러지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이나 다름없다. 경희대 조소과를 나온 작가는 1998년 첫 개인전을 가졌다. 전시 제목은 ‘존재의 고통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라’. 이후 ‘느림의 미학’ 등 철학적인 타이틀로 전시를 이어갔다.

그러다 2000년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생명의 사투를 벌인 후유증으로 한 쪽 다리를 저는 그는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작업에 열정을 쏟았다. 공기를 이용해 스테인리스 철판을 자르는 ‘플라스마(plasma) 기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쇠를 지지고 뚫어 그 속에 환한 빛을 넣는 작업으로 변화를 보였다. 어둠 속에 깃든 절망과 상처를 치유와 희망으로 환치시키는 작품이다.

2002년 ‘자연의 본질’이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통해 난생 처음 작품을 판매한 작가는 이후 날개를 달았다. 국내외 기획전 초청이 줄을 이었고 여기저기서 공공미술 설치 요청도 쇄도했다. 그렇지만 이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을 시도했다. 그가 이번에 철 조각으로 한 편의 드라마를 썼다. 절망에 허덕이다 안식을 찾기까지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작업이다.

23일까지 경기도 파주 헤이리 갤러리 이레에서 ‘Invisible Man(투명인간)’이라는 제목으로 10여점의 연작을 선보인다. 전시장 1층에는 후드 티를 입은 남루한 행색의 남자가 서 있다. 보석과 액세서리가 담긴 진열장을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지만 정작 아무것도 살 수는 없다.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자연의 품에서 치유받길 기대하며 바다를 찾는다.

투명인간이 찾아간 곳은 포항 앞바다. 뻥 뚫린 수평선 너머 시간의 역사를 말해주듯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며 상념에 잠기지만 공허하고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풍경은 전시장 2층 벽면에 빔 프로젝터를 통해 연출했다. 투명인간은 다시 작은 방으로 자리를 옮겨 자신의 이야기를 벽에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떠한 흔적도 남길 수가 없다.

보잘것없는 처지를 한탄하며 쪼그려 앉아 눈물을 흘리다 걸치고 있던 옷과 자신을 옭아매던 모든 것을 훌훌 벗어버린다. 힘든 몸을 이끌고 이불 속으로 숨어버리고, 거기서 유일한 안식을 찾는다. 전시장 3층 한쪽에는 투명인간이 벗어던진 옷가지가 덩그러니 남아 있다. 작가는 투명인간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안식을 얻었듯 자신을 내려놓고 이번 작업에 임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는 항상 열심히 살고 무엇인가를 향해 달려가지만 언제나 주변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자존심마저 상실한 사람들의 희망찾기를 조각 드라마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 역시 이제는 더 이상 웅크리지 않고 앞을 향해 힘차게 발돋움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031-941-4115).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