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용의자 취조하는 세 형사 황당무계 자신들 얘기만 쏟아내는데… 연극 ‘뜨거운 바다’
입력 2012-08-12 18:07
연극 ‘뜨거운 바다’의 배경은 일본 경시청의 한 취조실. 아타미 해변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세 명의 형사와 한 명의 용의자가 모였다. 그런데 이 연극, 처음부터 수상하다. 사건을 파헤칠 수 있는 지름길이 분명 있는데 자꾸 다른 쪽으로 간다. 당일치기면 될 걸 1박2일로 가는 식이다.
부장 형사는 여형사와 오랫동안 사귀어온 사이. 하지만 이 수사가 끝나면 여자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단다. 사랑하는 여자가 떠난다니 부장 형사는 극도의 흥분상태. 수사는 뒷전이고 관심은 여형사뿐이다. 용의자를 위협적으로 취조하기는커녕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여형사나 신참 형사도 자기 얘기에 바쁘다. 어리둥절한 건 용의자뿐이 아니다. 관객들도 당황하기 시작한다.
음악은 강렬해지고 조명은 드라마틱하게 변한다.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어 보이는 황당무계한 대사들이 속사포처럼 쏟아진다.
이 연극은 일본 현대연극의 흐름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츠카 고헤이(한국명 김봉웅)의 작품이다. 그의 기일 2주기를 맞아 기획됐으며 서울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에서 19일까지 무대에 올려진다.
1985년 츠카 고헤이 내한 당시 ‘아타미 살인사건’을 개작해 ‘뜨거운 바다’라는 제목으로 공연된 후 같은 제목으로 같은 무대에 올려지는 것은 27년만이다.
이번 무대를 준비하며 대학로 연극계는 ‘이 작품 연출은 고선웅이 해야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푸르른 날에’ 등에서 보여준 유머와 판타지가 츠카 고헤이와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고선웅 연출가도 “의뢰를 받았을 때 흥분되고 욕심이 났다”고 말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게 싫어서 스마트폰도 안 쓴다는 그는 “이 연극이 지금 나에게도 격정적인 사랑이나 꿈같은 고향이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네 명의 배우는 모두 오디션으로 뽑았다. 5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3차에 걸친 실기 테스트를 보고 만장일치로 4명을 뽑았다. 특히 여배우 이경미(22)는 21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배역을 거머쥔 신예로 이번이 데뷔 무대이다.
‘뜨거운 바다’가 첫 선을 보일 당시만 해도 극중극이나 배우가 객석에서 등장하는 방식 등이 새롭고 웃음을 줬다. 하지만 이제 이런 기법은 더 이상 실험적이지 않고 웃음 코드도 달라졌다.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이 요즘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한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