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재중] 검찰, 견제되지 않은 권력
입력 2012-08-12 18:43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서울중앙지검 1층 현관에 걸려있는 ‘검사선서’다. 검찰에 소환돼 조사실로 향했던 숱한 참고인과 피의자들이 한번쯤은 지나치며 보았을 법하다. 의사들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있듯이 검사들에게는 ‘검사선서’가 있다.
검사들은 처음 임용될 때 이 선서를 낭독한다. 그 순간 신임 검사들의 가슴은 공익의 대표자요, 정의의 파수꾼으로 느끼는 사명감으로 벅차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들이 초심을 잃고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지도 못한 채 권력의 ‘단맛’에 취할 때 누가 이를 견제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검찰의 권력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막강하다. 범죄수사에서부터 기소, 재판의 집행에 이르기까지 형사절차 전 과정에 걸쳐 광범위한 권한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고(몇 가지 예외는 있지만) 피의자를 재판에 넘길지 말지를 판단한다. 물론 검찰은 과거보다 권한이 많이 줄었다고 말한다. 그래도 검찰은 현직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기관이다. 이처럼 막강한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으며 제 역할을 다할 때 그들에게 주어진 권력을 인위적으로 제약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박수를 치고 성원해야 옳다. 그러나 검찰이 국민의 불신을 받게 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의 신뢰도가 47%로 나왔다”며 “신뢰도를 올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시스템을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절반 이상은 검찰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이 검찰을 불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의 분석대로 청렴도가 낮아서일까. 단순히 그런 이유라면 감찰을 강화하면 된다. 근본적인 원인은 검찰 수사의 공정성에 있다. 검찰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수사를 할 때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진실만을 추구했다면 국민의 신뢰도는 크게 상승했을 것이다. 하지만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재수사, 내곡동 대통령 사저 매입 의혹 등에서 보듯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에 엄격한 법적 잣대를 들이대지 못했다. 국민의 의혹을 속 시원하게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신을 자초했다.
검찰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에 선거 등을 통해 심판할 수도 없다. 결국 검찰의 권력을 분산시키고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최근 자신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검찰뿐 아니라 견제되지 않는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됐다면 고위 공직자 수사처 신설 등 권력을 분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옳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이 견제를 받지 않고도 자정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좋은 해법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검사들이여! 검사선서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고 초심으로 돌아가라.
김재중 정치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