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 소비자의 반격] 이미지 치명상 찍히면 죽는다… 실적·주가 곤두박질 자칫하단 기업근간 흔들

입력 2012-08-10 18:56


‘다윗이 여럿 뭉쳐야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다!’ 기업 활동으로 인해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공동으로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증가하자 송사에 휘말린 기업들은 말 그대로 ‘소송앓이’를 하고 있다. 그만큼 전보다 소비자들이 기업의 경영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근래 발생한 주요 집단소송의 사례에서 보여 온 기업들의 소비자에 대한 태도나 문제에 대한 책임의식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 얘기는 안 하면 안 될까요….” 소비자들에 의해 집단소송이 제기된 업체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현재 진행 중인 소송 건에 대해 민감한 사안이라며 말을 아꼈다. A건설사 관계자는 “소비자들에게 ‘저 아파트는 문제 있는 회사가 지은 것’이라는 낙인이 찍혀 여론재판을 받았던 악몽이 떠오른다”며 업체명이 직접 언급되는 것조차 꺼렸다.

‘소비자 주권’ 의식이 높아지면서 기업으로부터 같은 유형의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소송 내용도 멜라민 과자, 불량 만두 등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먹거리 문제부터 업체 간 담합, 건설사들의 허위과장광고 의혹, 정보통신기술(ICT) 발달에 따른 개인정보 유출 사고까지 다양해졌다.

◇기업 근간 ‘이미지와 실적’ 흔들=기업들은 소비자의 집단소송에 대해 회사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메가톤급 쓰나미’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기업에 가장 중시되는 ‘기업 이미지’와 ‘경영실적’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겪은 ICT 업체 B사의 법무 담당자는 “소송의 규모나 결과를 떠나 브랜드 이미지 실추 및 방어적 경영체계 운영 등 직간접적 여파가 상상 이상으로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SK커뮤니케이션즈의 경우 올 4월 네이트 개인정보 유출 건 관련 고객의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패소한 뒤 주가가 7일 연속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는 실적 악화의 단초가 됐다. 경쟁업체들의 분전에도 SK커뮤니케이션즈는 외부 시선 때문에 적극적인 마케팅과 신규 서비스 제공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고 올 1분기 영업손실 95억원을 기록했다는 분석이다.

최근 870만 가입자 개인정보 유출 건으로 집단소송이 준비되고 있는 KT도 2분기 실적 악화와 더불어 돌발 악재가 발생하며 주식시장에서 주가 하락과 투자심리 위축을 걱정하는 모습이다.

또 다른 이유로 집단소송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기업들도 있다. 해킹 범죄에 따른 개인정보 유출로 소송을 당한 ICT 업체나 도시개발계획 변경으로 주변 인프라가 달라지면서 허위 분양광고 혐의를 받게 된 건설사들이다. 이들 업체는 고객 피해에 대해 “도의적 책임은 인정하지만 직접적인 위법 행위의 주체는 자신들이 아니라 제삼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건설업계에선 부동산 경기 침체가 집단소송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허위 분양광고 의혹으로 입주자들과 5년째 소송을 진행 중인 C건설사 관계자는 “분양가가 떨어지다 보니 그 손실분을 보전하기 위해 로펌을 끼고 집단으로 입주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기획 소송도 많다”고 설명했다.

◇집단소송 확대, 기업은 ‘글쎄…’=기업들의 주장에도 여전히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기업보다 소비자 권익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에서는 경제민주화 이슈와 더불어 소비자 권익 강화를 위해 집단소송제를 산업 전반으로 확대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소비자·시민단체도 소송 남발 우려에는 동의하면서도 집단소송에 대한 기업들의 근본적 인식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권익센터 윤철한 국장은 “우리나라에선 기업들이 경영활동 중 사소한 위법행위는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너무 관대하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면서 “소비자 권익을 무시하며 기업이 망할 정도의 중대한 위법행위를 했다면 그런 기업을 감싸며 계속 키워나가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기업들이 소비자의 피해를 구제하고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론에 동의하면서도 집단소송 확대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소비자보호법상의 소비자단체 소송이라든지 개인정보보호법상의 위법행위 중지 소송 등 기존의 제도만으로도 충분히 기업의 잘못을 제재할 수 있다는 논리다.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 강석구 팀장은 “소송 얘기가 자꾸 불거지면 기업 이미지가 나빠지면서 주가가 하락하고 적대적 인수합병(M&A)의 표적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집단소송의 여파가 주가 하락을 이끌 경우 외국인 투자 비중이 30% 이상을 차지하는 우리 기업들의 현실에서 경영권을 위협받는 상황이 가중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홍해인 기자 hi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