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8월 11일] 원망을 버려야 축복이 온다
입력 2012-08-10 18:26
찬송 : ‘아버지여 이 죄인을’ 276장 (통 33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민수기 11장 1∼9절
말씀 :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길에서 악한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망은 가장 보편적인 삶의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망해보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원망할 때 악한 언어로 하나님을 공격하는 것만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확하게 이런 삶의 정황에 처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그들은 기억해야 할 중요한 몇 가지를 망각한 채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망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첫째, 과거의 은혜를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영혼을 부르며 다짐하기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편 103:2)고 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망각하는 순간 우리가 거하는 자리는 원망의 자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만은 잊지 마십시오. 내 삶의 위기에서 부르짖어 도움을 구했을 때 응답하신 그 은혜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의 은혜의 감격이 회복될 수 있다면 원망은 내 마음속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둘째, 현재의 축복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축복을 증언합니다. 만나는 아직도 하늘에서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백성은 만나를 감사하기보다 없는 고기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4절 앞부분에는 이 불평의 원인을 두 가지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탐욕이요, 둘째는 그들이 이 탐욕의 생활방식을 ‘섞여 사는 무리’, 즉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섞여 애굽을 떠난 이방인에게서 배웠다고 기록합니다. 오늘날 방식으로 표현하면 성도들이 탐욕의 생활방식을 불신자에게 영향 받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처음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만나를 선물 받았을 때 그들은 꿀맛이라고 감격해 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이 만나는 감격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만나를 축복으로 바라보는 눈이 지금은 없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축복에 익숙해지면 축복을 축복으로 바라보는 마음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족하고 불편한 가운데서도 이미 주신 축복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고난을 넘어서는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약속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에서 적지 않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좀 힘들어도 조금만 견디면 가나안에 도달할 것 아닙니까. 만일 이 백성이 가나안을 마음으로 보고 있었다면 원망에 빠져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때때로 인생의 광야 길에서 우리는 목표에 대한 시야를 상실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방황과 원망의 때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믿음의 눈으로 약속의 땅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나 우리를 도우시는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인생의 행진을 계속할 것입니다.
기도 : 주님, 날마다 주께서 주시는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인환 목사(서울 신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