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서울시 조직개편 읽기
입력 2012-08-10 18:31
정보공개정책과, 동물복지과, 인권담당관, 노동정책과….
서울시가 오는 10월 신설하겠다고 밝힌 과(課) 단위 부서들 중 일부다. 광역시나 도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조직들이다.
정보공개정책과는 시민들에게 행정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부서고, 동물복지과는 동물보호나 동물보건정책을 담당한다. 인권담당관은 시민의 인권·권익증진 정책을 추진하는 전담부서다. 노동정책과는 노사협력을 강화하고, 취약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지원하는 일을 맡는다고 한다. 이외에도 소상공인,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을 지원할 소상공인지원과나 보행자 중심의 도로정책을 담당할 보도환경개선과 등이 눈길을 끈다.
조직개편안 내용에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정 철학이 엿보인다. 박 시장은 시민운동가 출신답게 소통 투명 인권 복지 참여 혁신 창의 등의 가치를 더욱 중시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런 만큼 하드웨어(hardware)보다는 제도나 시스템 개선 등 소프트웨어(software)에 더 관심을 보인다. 한강르네상스사업이나 뉴타운 조성사업,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립 등 눈이 번쩍 뜨이는 대규모 개발사업에 치중했던 오세훈 전 시장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다음날인 지난해 10월 27일 취임한 박 시장은 그동안 무상급식 중학교 1학년까지 확대,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 실현, 뉴타운 출구전략 추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민감하고 묵직한 현안들을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노숙인에게 중고 스마트폰 제공, 서울동물원 남방돌고래 제돌이 방사 결정, 여름철 반바지와 샌들 착용을 장려하는 쿨비즈 캠페인, 각계 시민들이 모여 복지정책을 직접 결정하는 ‘1000인의 원탁회의’ 등 톡톡 튀는 구상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박원순호 9개월’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지만 달가워하지 않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벤트성 정책을 남발해 행정을 희화화하고, 너무 이상에 치우치며, 전임 시장의 흔적 지우기가 심하다는 지적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바라볼 일은 아닌 것 같다. 개발, 외형성장, 물질, 경쟁 등을 중시하는 기존 프레임에서 이젠 벗어날 때도 됐다. 시민의 삶을 바꾸는 건 사실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니까.
마음에 걸리는 건 박 시장이 지나치게 의욕적이라는 점이다. 푸근한 인상과 달리 그는 ‘완벽주의자’ ‘일과 결혼한 사람’이라고 불릴 정도로 지독한 일벌레다. 시민운동가 시절부터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엄청난 양의 아이디어를 쏟아냈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 조직을 다그쳤다. 이는 우리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그가 주도했던 시민단체(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의 위상을 높인 밑거름이었다.
하지만 1000만 인구가 살고 있는 거대도시 서울에서도 그런 방식이 유효할지는 미지수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집착이 행여 설익은 정책의 남발로 이어져 시민들과 정책 수행자인 시청 직원들에게 피로감만 안겨주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일까.
정책은 현실성 있고 지속가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새롭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나 조직도 필요하다. 그러나 검증된 조직이나 정책을 잘 관리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임대주택 8만호 건설, 무상급식 중학교 전체 학년으로 확대, 동네 공공도서관과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서울시 부채 7조원 감축….
할 일은 너무 많지만 무리하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저 시민만 바라보며 직원들보다 반 발짝만 앞서가는 박 시장이 됐으면 좋겠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