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이순신-⑥ 역사관] 자부심으로 새 역사를
입력 2012-08-10 18:32
“저녁 내내 홀로 수루 위에 앉아 있으니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른다. 우리나라 역사(東國史)를 읽어보니 개탄스러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1596년 5월 25일)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 우리나라 역사책을 읽고 쓴 일기다.
당시 이순신이 읽은 역사책은 ‘삼국사기’ ‘동국병감’ ‘동국사략’ 가운데 하나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장수였고, 전쟁기간이었던 것, 또 이순신이 인용한 글 등을 통해 추정해 보면 우리 민족이 치른 침략자와의 전쟁을 정리한 ‘동국병감’으로 보인다. 실제로 읽어보면 이순신이 남긴 기록처럼 답답하고, 한탄이 절로 나온다.
이 땅의 사람들은 언제나 피해자였고,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평화에 젖어 전쟁을 잊었고, 내부갈등으로 자중지란을 일으켰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외부 변화에 무지했다. 그 결과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은 침략자에 의해 참혹하게 죽어야 했다.
인간 이순신은 고난 속에서 갈고 닦아 만들어낸 아름다운 인격, 백성에 대한 진정한 사랑으로 하늘까지 감동시킬 겸손함을 지녔다. 그러나 실천하는 지식인 이순신은 그가 읽고 판단한 것처럼 분명한 역사의식을 갖고 자신에게 부여된 소명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순신이었기에 특정한 시대, 유행, 소속 국가 혹은 민족의 부침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현인(賢人), 백전백승의 영웅, 탁월한 경영자들과 달리 영원히 사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삶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위기가 닥쳤을 때는 언제나 그에게 기댄다. 이순신을 통해 믿음을 회복하고 용기를 얻는다. 시련 속에 있는 사람에게 이순신은 어둔 밤에 길을 잃지 않게 만들어주는 북극성과 같은 존재이다. 우리나라의 근현대는 이순신이 한탄했던 것과 비슷한 역사였다. 무능한 리더들과 책임의식이 없는 국민들로 인해 나라가 망했고, 허리가 잘리고, 동족끼리 엄청난 살육을 벌였다. 고질병과 같은 가난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땅의 사람들이 변했다. 이순신처럼 온갖 난관에 맞섰고 승리했다. 2012년 대한민국은 풍요롭고 강한 나라이다. 세계 15위 경제대국, 유엔 사무총장 배출, 세계에 퍼지는 한류, 올림픽에서의 눈부신 성과…. 모두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자부심을 갖고 세계인과 나누고 이끄는 새 대한민국을 만들어 갈 때다.
박종평(역사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