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비영리단체 기부금 줄줄 샌다
입력 2012-08-09 19:18
서울시에 등록된 비영리단체 상당수가 신고 규정을 어긴 채 기부금품을 임의대로 모금해 사용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기부금이 기부 목적과 다른 곳에 쓰일 가능성이 있는데도 이 단체들은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일보가 9일 입수한 ‘2010년 1월∼2012년 7월 서울시 비영리단체 기부금품 등록현황’ 자료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 비영리단체 1120곳 중 복지·봉사·구호 활동 등을 내세워 상시 모금활동을 벌이는 단체는 550여곳이다. 활동이 활발해 기부금이 1000만원을 넘는 곳이 상당수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들 단체 중 기부금 모집 내역을 신고한 단체는 20곳에 불과했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이하 기부금법)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단체에 가입한 회원이 낸 가입비나 정기회비 등을 제외하고 불특정 다수에게서 걷은 금액이 1000만원을 넘으면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기부금 모집 신고 규정을 어긴 단체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장 출마 직전인 2011년 9월까지 명예이사로 활동했던 K동물보호단체도 포함돼 있다. 이 단체는 캠페인 모금활동 등으로 올 상반기에만 1억6000여만원을 모았다. 하지만 모집 내역을 시에 신고하지 않았다. 이 단체는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내는 회비를 포함한 상반기 총 수입 3억3500여만원 중 1억원을 직원 급여 및 복리후생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명 인사들이 줄지어 후원금을 내 유명해진 H동물복지협회도 2010년부터 시작한 동물보호소 건립 모금 기부액이 6억원을 넘었지만 한 번도 신고하지 않았다. 사업 진행사항 및 사용 내역도 알리지 않았다. 이 단체는 “회원들이 낸 돈이라 기부금법엔 해당되지 않아 신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홈페이지엔 기부금을 낸 비회원들에게 기부금 영수증 발행 방법을 안내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국민일보가 취재에 들어가자 이들 두 단체는 부랴부랴 시에 기부금품 모집 사실을 신고했다.
비영리단체들이 신고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임의대로 기부금품을 모금해 활동하고 있지만 단속이나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등록 단체가 워낙 많아 스스로 신고하지 않는 한 단속이 어렵다”면서 “어떤 단체가 어떤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는지 시 자체적으로는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기부금 유용이나 횡령 사고가 잦을 수밖에 없다. 동물보호 활동을 하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해 온 임모(40·여)씨는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하겠다며 후원금을 모은 뒤 이를 자신의 카드 대금을 갚는 데 썼다. 임씨는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기소돼 지난 5월 대법원에서 벌금 150만원 선고유예가 확정됐다. 지난해 6월엔 유기동물 보호비 명목으로 지자체에서 받은 후원금 6억원을 횡령해 개인채무 변제, 주식투자 등에 사용한 모 동물보호 단체 회장 한모씨가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