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신창호] 진보의 패러독스

입력 2012-08-09 18:42


1986년 액슬 코티 감독이 만든 영화 ‘비엔나로 가는 길’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 좌파의 분열과 갈등을 다루고 있다. 사회주의자로 해외망명까지 감행하며 나치와 맞서 싸웠던 두 친구는 패전국 독일로 돌아온 다음 적(敵)이 된다. 한 명은 스탈리니스트로 동독을, 또 한 명은 사민당(SPD) 당원으로 서독을 택한다.

동독을 택한 친구는 그렇게도 증오하던 나치의 방식으로 민중을 통치하고, 서독에 남은 친구는 새로운 방식의 사회민주주의를 개척하는 데 온 힘을 바친다. SPD 당원 친구의 눈에 동독 친구는 ‘괴물’로 비쳐진다. 사회주의의 이상(理想)을 더 이상 친구의 눈에서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초라하게 시작된 SPD식 사회주의는 1969년 빌리 브란트 당수가 총리로 집권하면서 독일을 넘어 전 세계 좌파의 새로운 지향점이 됐다. 경제 부흥에 복지와 공평한 분배를 융합한 어젠다는 우파조차 부정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받아들여졌다.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 이후 32년이 지난 1991년 소련 위성국 동독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반면 SPD는 통일독일의 하늘 아래서 아직도 기민당과 1, 2위를 다투는 정치세력으로 살아남았다.

‘진보의 패러독스’, 전후 SPD 재건 과정에서 서독 좌파가 가장 고민한 게 이 문제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권 국가를 바라보는 SPD의 시각은 ‘미래로 나아가야 할 진보세력이 오히려 역사를 거꾸로 거슬렀다’는 것이었다. 소련식 스탈린주의, 냉전체제와 폭압적 통제국가 등을 만든 장본인이 진보세력이라는 역설을 용납하지 않은 셈이다.

지난 4·11 총선 직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형편없는 속사정을 모두 다 지켜봤다. 어딜 가서도 ‘진보 최고’를 외치던 통합진보당 정치인들 상당수가 온갖 편법에 기대어 자신의 정치생명을 유지해왔음을 알게 됐다. 소위 ‘구당권파’가 10여년간 이끌어온 진보정당의 토대가 민주주의도, 새로운 사회를 향한 비전도 아니었음을 확인했던 대목에선 절망과 푸념을 뱉어야 했을 정도다. 총선 비례대표 경선부정 사태가 터졌을 때는 모두가 50여년 전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를 떠올렸고 종북논란 와중에선 구당권파 인사들의 ‘건전한 상식’까지 의심해야 했다.

지금 통합진보당은 당이 쪼개질 위기에 처해 있다. 신당권파는 “더 이상 저들과 같이 갈 수 없다”며 별도 정당 건설을 선언했고, 구당권파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기득권만 지키는 데 혈안이다. 4개월여 동안 당 홈페이지로 중계된 갖가지 당내 회의에서 신당권파 소속이든 구당권파 소속이든 어느 누구도 진보정당의 어젠다를 논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50년대 서구 진보정당들에 밀어닥쳤던 ‘진보의 패러독스’가 엄습했음에도 통합진보당은 세력 다툼에 여념이 없는 상태다.

왜 우리 진보정당에는 기성 정당이 갖지 못한 새로운 정책이 없을까. ‘부자 증세’를 맨 먼저 주장해놓고도 왜 이를 이룰 구체적인 방법은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까. 복지냐 성장이냐는 논쟁이 불거졌을 때, 왜 진보정당의 정교한 논리를 우리는 들어볼 수 없을까….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들이 떠오르지만 통합진보당 내부에선 어떠한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아마도 “현재의 통합진보당은 진정한 진보가 아니어서 그렇다”는 게 대답이 되지 않을까. ‘앞으로(進·진) 걸어 나아가야(步·보)’할 사람들이 뒷걸음만 치고 있다는 뜻에서다.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