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땅에 떨어진 의사들의 윤리의식
입력 2012-08-09 18:41
대한의사協, 실효성 있는 대책 세워야
환자의 시신을 유기한 산부인과 의사 김모씨의 비윤리적인 행각이 경찰수사 결과 낱낱이 드러났다. 김씨는 당초 “환자에게 수면유도제를 투약했더니 숨졌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1년 전부터 내연관계인 피해자 이모씨에게 수면유도제인 프로포폴을 투약하고 성관계를 가졌다. 이씨가 숨진 날에는 수면유도제와 수술용 마취제, 진통제, 항생제 등 10여종의 약품을 링거액에 섞어 주사한 뒤 입원실의 환자용 침대에서 관계를 맺었다. 이 중 수술용 마취제는 정맥주사가 금지된 약품이다. 경찰은 김씨가 더 강한 성적 자극을 위해 마취제를 쓴 게 아닌지 조사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마취상태에서 성관계를 맺은 점에 미뤄 성도착증마저 의심하고 있다.
황당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 힘든 수련과정을 거친 사람에게만 면허를 주는 이유다. 직업 이름에 ‘스승 사(師)’가 들어갈 정도로 존경을 받으며, 당연히 높은 윤리의식을 갖춘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환자가 의사 앞에서 신체를 노출해도 거리낌이 없는 것은 의사의 도덕성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가 저지르는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은 자신의 병원에 취직시켜주겠다고 20대 여성을 꾀어 전신마취제를 투여해 의식을 잃게 하고 성폭행한 성형외과 의사에게 징역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2010년에는 정형외과 의사가 여성 환자 10여명에게 마취제를 주사한 뒤 성추행한 사건도 있었다. 의대 학생들마저 술에 취해 잠든 동료 여학생을 성추행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성폭력 범죄로 입건된 의사 수가 2006년 35명, 2007년 40명, 2008명 48명으로 매년 늘고 있다”며 “진료 중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자격을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도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자격을 박탈하는 내용의 관련법 제·개정에 의사들은 이중처벌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성 범죄자를 의사로 인정할 수 없다는데도 의사들의 윤리의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가 뒤늦게 형사처벌을 받은 의사의 면허를 정지·취소하는 방안을 마련한다고 했으나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지 의문이다. 일부 파렴치범 때문에 의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동시에 의료용으로 쓰이는 마약류의 관리도 강화해야 한다. 김씨는 프로포폴 등 수면유도제를 자신이 쓰겠다며 간호사에게서 받았고, 마취제는 수술실에서 몰래 가져왔다고 했다. 2010년 병·의원에서 발생한 마약의 도난 및 파손사고는 525건에 달했다. 사건 대부분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당국은 인력과 예산부족 탓만 하고 있다. 마약중독자 중에는 수면유도제 등을 처방받은 뒤 중독된 경우가 많다. 정부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