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1000만 향해 순항… ‘도둑들’ 흥행 홈런 최동훈 감독 “내 영화의 모토는 재미”
입력 2012-08-09 18:08
영화는 기대치와의 싸움이다. ‘도둑들’은 기대치가 높은 영화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등 내놓는 작품마다 호평을 받았던 최동훈 감독(41)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했다.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김해숙 김수현 등 쟁쟁한 배우들이 포진했다. 하지만 ‘도둑들’은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이 크다’는 압박감을 견디며 개봉 16일 만에 관객 800만 명을 거뜬히 돌파했다. 올해 한국영화 개봉작 중 흥행 성적 1위다. 1000만 돌파도 가능할 기세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최 감독을 만났다. 표정이 밝았다. 영화 세 편까지는 신인 감독인데 자신은 이제 겨우 신인 꼬리표를 뗀 셈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도둑들’은 다이아몬드를 훔치기 위해 한국과 중국에서 모인 각 전문 분야 도둑들이 금고를 터는 이야기. 각 캐릭터의 앙상블이 뛰어나다. ‘모시기’ 어려운 배우를 무려 10명이나 한꺼번에 불러 모았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는 “무조건 시나리오로 꼬신다”고 말했다. 보통 시나리오 한 편을 구상하고 쓰는 데 2∼3년이 걸린다. 최소한 감독 자신이 그 시간동안 ‘미치도록’ 몰두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여야 한다. 배우도 이야기에 반해 이 영화가 꼭 하고 싶어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격의 없는 사이인 김윤석에게 그는 “언제든지 내 시나리오가 별로이거나 당신이 하는 게 좋지 않다고 생각되면 거절해라. 그런 걸로 삐치지 맙시다. 일은 일이니까”라고 말한다. 그는 배우의 마음을 못 훔치면 관객의 마음도 훔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영화의 최대 수혜자는 전지현인 듯하다. ‘엽기적인 그녀’이후 다소 아쉬움을 남겼던 전지현은 이 영화에서 배우로서 매력을 아낌없이 발산한다. 최 감독은 “직접 만나보니 잠재력이 큰 배우였다. 아주 유머러스하고 긍정적이다. 저 배우가 웃거나 험한 말을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내가 일단 매료됐다”고 말했다.
배우를 캐스팅할 때 감독은 두 가지 고민을 한다. 이 역할에 배우가 맞을까, 관객이 이 배우를 좋아할까. 전지현은 이 두 가지에
대한 확신을 갖게 했다. 혹시나 했던 김혜수와 전지현, 두 여배우간의 신경전도 없었다.
감독이 특히 좋아하는 장면은 후반부 작업복을 입은 두 여배우가 엘리베이터에 함께 있는 장면. 작업복을 입었을 뿐인데도 두 배우가 뿜어내는 긴장감이 묘하게 섹시했다. 그는 “감독으로서 그런 장면 찍을 때는 짜릿짜릿하다. 밥을 먹고 싶지 않을 정도다. 되게 재미있는 것을 찍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윤석 이정재처럼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배우, 역사가 다른 배우가 한 화면에 나오는 장면에도 쾌감을 느꼈다. 그는 “전혀 다른 뉘앙스가 있는 배우가 한 영화에서 격돌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영화에는 여러 재미가 있다. ‘범죄의 재구성’에 탄탄한 구성의 재미, ‘타짜’에 페이소스, ‘전우치’에 순수한 느낌이 있다면 ‘도둑들’은 상황에 놓인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있다. 감독은 “내가 스토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지만 이번 영화에선 캐릭터가 스토리를 압도하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그래선지 영화는 금고털기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인물 간 알 듯 말 듯한 관계, 사랑과 배신도 한 축을 이룬다. 감독은 “‘범죄의 재구성’때의 아쉬움을 여기서 달랬다”고 말했다. 당시 주인공(박신양·염정아)의 멜로가 있었는데 전체 영화에 안 어울려서 편집에서 뺐다. 그는 “좋은 걸 찍으려면 네가 좋아하는 것을 다 빼라”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을 인용했다. 아쉬웠고, 다음엔 그런 부분을 살려야지 했다.
벌써 ‘도둑들2’ 얘기가 나온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아마도 김수현이 아니겠느냐는 추측도 나온다. “너무 좋은 배우다. 앞으로 대배우로 성장할 것 같다. 2편을 찍을 때는 섭외가 안 될 것 같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김수현이 첫 영화를 나랑 찍었구나 생각하면 그건 감독으로서 행운”이라며 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최 감독이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뇌리에 박힌 말이 있다. 한 팝아트 사진에서 본 문장인 ‘재미를 위한 투쟁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미국 작가 스티븐 킹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내 책을 읽기 시작한 독자가 이 책을 다 끝내기 전에 뉴욕에 도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최 감독도 어떤 주제와 소재이건 재미를 최우선에 두고 싶다. “세월을 견디며, 두 번 이상 봐도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라는 감독의 눈빛에서 진심과 열망이 느껴졌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