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음악인생 후반전 시작됩니다”… 돌연 재즈 들고 낭만을 찾는 가수 최백호

입력 2012-08-09 18:10


‘낭만가객’ 최백호(62)는 소문난 축구광이다. 1979년 당시 드물게 연예인 축구팀을 만들었고, 예순이 넘은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운동장에 나가 동료들과 공을 찰 만큼 축구를 사랑한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최백호를 만났을 때도 그는 인터뷰 틈틈이 축구 얘기를 꺼냈다. 주로 다음 날 새벽에 있을 우리나라와 브라질과의 올림픽 4강전이 도마에 올랐다. “우리가 브라질을 이기긴 힘들 것이다” “대표팀엔 스트라이커 박주영을 거들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76년에 데뷔해 ‘낭만에 대하여’ ‘영일만 친구’ 등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한 그의 36년 음악인생을 축구에 비유한다면 어떠할까. “전 이제 전반전 끝났어요. 건방진 얘기지만 지금 3대 0으로 이기고 있는 거 같아요(웃음). 후반전은 더 잘 뛸 자신 있습니다. 젊었을 때보다 노래에 대한 자신감이나 열정이 훨씬 커졌거든요. 컨디션이 지금 최고예요.”

이날 최백호를 만난 건 그가 다음 달 9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여는 콘서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였다. 그는 색다른 도전을 준비 중인데, 바로 재즈 공연을 열기로 한 것. 재즈 피아니스트 한충완이 이끄는 콰르텟(Quartet·4중주단)과 함께 자신의 히트곡과 올드팝을 재즈풍으로 편곡해 선보인다. 2년 만에 열리는 그의 콘서트이기에 팬들의 기대가 크다.

-2년 만에 여는 콘서트가 ‘재즈 공연’이라는 게 뜻밖인데.

“내가 해온 음악과는 다른 색깔의 음악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예전부터 있었다. 함께 무대에 설 밴드를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했는데, 한충완씨하고 옛날에 어떤 곡을 레코딩하며 호흡을 맞췄던 일이 생각나더라. ‘노래를 살려주는’ 반주를 하는 분이라 언젠가 한 번 같이 해보고 싶었다.”

-원래 재즈를 좋아했던 건가.

“재즈를 잘 모르지만, 최근에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씨 공연 등을 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 연주자와 보컬이 대화를 나누는 음악이 재즈 같더라. 내가 지금껏 했던 음악은 반주가 ‘쿵쿵따’하고 나오면 나는 거기에 맞춰 노래하는 형태였는데, 재즈는 완전히 다르다.”

최백호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는 2008년부터 SBS 러브FM ‘최백호의 낭만시대’ DJ로 활동하고 있고, 2009년엔 화가로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같은 해엔 MBC 드라마 ‘트리플’을 통해 연기에 도전했다.

하지만 팬들은 그의 왕성한 활동에 되레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탁하면서도 그윽한, 독보적 음색을 가진 최백호의 노래와 무대를 더 자주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방송인 배철수는 지난 3월 MBC ‘주병진의 토크콘서트’에 출연해 “최백호는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가수다. 노래에만 전념했으면 좋겠다. 이 형의 재능이 다른 데 소비되는 게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너무 많은 일을 벌이는 거 같다. 팬들은 음악에 더 집중했으면 하는 마음도 적지 않은데.

“나한테 가장 중요한 건 음악이다. 노래는 꾸준히 연습한다. 연습하지 않으면 목에 녹이 슬 수밖에 없다. 틈날 때마다 기타를 잡는다. 나이가 들수록 목소리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나이를 먹는 게 행복하다’는 말을 과거 방송이나 언론 인터뷰에서 자주 했다.

“어떤 사람들은 늙는 걸 비참하게 생각하는데 나이는 재산이다. 시간은 흘러가버리는 게 아니라 자기 안에 쌓인다. 나이가 드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히트곡이 있지만 최백호 최고의 인기곡은 단연 ‘낭만에 대하여’다. 중년의 허무와 외로움을 담담하게 담아낸 이 곡은 발표한 지 17년이 흐른 지금도 세월을 초월해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다.

그는 “지금 봐도 내가 이런 가사를 어떻게 썼는지 신기하다”며 웃었다. 최백호가 이 곡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은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이라고 노래하는 대목이다. “나이가 들면 ‘청춘의 상처’도 그리워지는 시기가 있거든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가슴을 울리면 바로 중년이 된 거라고.”

최백호는 아흔 살까지 가수로 활동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그때쯤 되면 기가 막힌 노래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음악 외에 도전해보고 싶은, 하고 싶은 일들을 열거하기도 했다. 조각가, 축구감독, 수필가….

하지만 현재 가장 꿈꾸는 일은 프랑스 남부의 한 시골마을로 가서 1년 정도 사는 것이다. “TV에서 보고 반한 동네가 있어요. 이름은 지금 기억이 안 나는데, 굉장히 아름답더라고요. 언젠가 꼭 갈 겁니다. 얼마 전에도 활동 다 그만두고 프랑스로 떠나려고 했는데, 와이프가 적금 만기 되려면 2년 남았으니 더 일하라고 하더라고요. 아내는 한국에 두고 가고 혼자 갈 생각인데, 아직 아내한테 혼자 떠나겠다는 말은 못 했어요(웃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