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프로, 첫발을 내딛다

입력 2012-08-08 19:41


새로운 여자프로기사 2명이 탄생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41회 여자입단대회 최종 4강 본선 리그에서 오유진은 송혜령, 박태희를 꺾고 먼저 입단을 결정지었다. 올해 충암중학교 2학년인 오유진은 지난 5월 세계청소년바둑선수권대회 국내선발전에서 남자연구생들을 물리치며 여자 최초로 한국대표로 선발된 만큼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인재였다.

어린 나이에 큰 어려움 없이 프로가 된 듯 보이지만 오유진의 입단스토리에도 굴곡이 있다. 6살 때 언니를 따라 바둑을 배우게 된 그녀는 남다른 재주로 6개월 만에 유치부 바둑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 후 주변의 관심과 기대 속에 자연스럽게 프로의 꿈을 꾸게 된 그녀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꾸준히 성장하며 실력을 갖춰갔다.

하지만 6학년 겨울에 오유진은 슬럼프에 빠지며 바둑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녀의 재능을 아는 주변 스승들과 부모의 마음은 안타까웠지만 이미 마음이 떠나 되돌리긴 어려웠다. 프로가 되는 사람들에게 바둑은 숙명 같은 것이다.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지 않는 늪처럼. 6개월 정도의 방황을 그치고 그녀는 바둑계로 복귀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외도의 시간만큼 노력은 두 배, 세배가 필요하다. 그래도 한번 잃어본 사람은 그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기에 온 열정을 쏟아 다시 매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7월의 끝자락에 오유진은 다시 한번 “남자들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최고의 여자기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루 늦은 31일. 대국장 문을 열고 나오는 김신영의 얼굴은 울음 범벅이었다. 이 울음은 패배에 대한 아픔의 눈물이 아니다. 그동안 그녀의 삶을 대변하는 한 서린 울음이었다. 김신영은 그날 프로가 되는 마지막 한 장의 티켓을 놓고 박태희와 대결 끝에 티켓을 거머쥐었다. 8살에 바둑을 시작해 어느 순간부터는 늘 입단 영순위로 꼽혔다.

김신영은 2008년 WMSG 페어바둑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지지옥션배 아마선수로 참가 6연승을 거두며 여류강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입단은 멀게 느껴졌다. 중학교 3학년부터 입단대회 본선에 진출하며 늘 주변을 맴돌았지만 결국 20살을 넘기며 프로는 꿈같이 멀어져버렸다. 하지만 김신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모두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을 했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사활 책을 손에 쥐고, 일주일에 두 번 6㎞를 달리며 정신과 체력을 키웠다.

그리고 결국 21살에 프로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요즘 메달을 따고 서럽게 눈물 흘리는 선수들을 본다. 저 눈물은 기쁨의 눈물도 슬픔의 눈물도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참고 견뎌왔던 삶의 무게만큼 복받쳐 오르는 한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자기 자신에게 주는 휴식이자 위로이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