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프랑스 국방개혁의 교훈
입력 2012-08-08 19:25
1997년부터 시작돼 2015년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는 프랑스의 국방개혁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랑스의 국방개혁이 호평을 받는 것은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지만 국민들의 지지와 육·해·공군 각 군의 이해관계를 극복할 수 있는 내부 공감대를 확보한 덕분이기도 하다. 개혁의 성과를 매년 국회에 보고하고 지속적인 여론조사를 통해 국방개혁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유지해오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프랑스가 대대적인 국방개혁을 추진한 것은 안보환경 변화와 제한된 국방예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탈냉전 이후 프랑스의 안보 위협은 변했다. 프랑스는 국경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소멸된 대신 지역분쟁이 확산되는 점에 주목했다. 또 국방예산을 줄여야 하는 상황과 1991년 걸프전에서 확인됐듯 최단시간 내 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잘 준비된 직업군인으로 편성된 강한 부대의 필요성에도 주목했다.
프랑스는 우선 군의 전문화·현대화를 추진키로 했다. 이를 위해 정원의 30%를 감축키로 하고 징병제를 직업군인제로 전환했다. 프랑스에서 징병제는 독특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 변화를 주는 것이 쉽지 않은 사안이었다. 나폴레옹 황제 시절 시작돼 1789년 프랑스혁명에서 강화된 유서 깊은 이 제도는 ‘국민의 억지력’으로 불렸고 국민의 애정도 듬뿍 받았다. 징병제는 두차례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지켜온 효과적인 수단이었고 누구나 국가방위를 위해 군복무를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연대성 확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프랑스는 국방개혁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전 징병제에 대한 대토론회를 수차례 마련했다. 의회가 주도한 토론회에는 정부기관과 각종 사회단체, 청소년들까지 참석했다. 국민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조치였다. 토론회 결과는 ‘프랑스의 군복무’와 ‘국가봉사의 미래’라는 두 권의 보고서로 정리됐다.
국방개혁 진행이 더딘 분야도 있고 예상치 않은 상황이 발생해 추진 내용이 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방개혁 찬성 비율이 96년 57%에서 99년 82%까지 오를 정도로 국민들의 지지도는 높다. 정부가 국방개혁에 대한 여론수렴 노력을 꾸준히 해온 덕분이다. 군 관련 홍보요원 3만2000여명이 전국적으로 활동하며 생생한 지역 여론을 취합하고 매년 3차례 국방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해 최대한 개혁과정에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든 행정개혁에는 저항이 뒤따르기 마련이지만 프랑스 정부의 이런 자세로 거부감은 적은 편이다. 개혁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은 개혁으로 피해를 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모두가 그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개혁의 내용을 잘 모르거나 막연한 거부감으로 반발할 수도 있고 추진방법과 과정의 독선과 비합리성 때문에 저항할 수도 있다. 프랑스는 이런 부정적인 요소들을 대국민토론회와 내부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으로 해소하고 있다는 점이 현재 우리 국방부가 추진하는 국방개혁이 직면한 어려움과 다른 점이다.
국방부는 지난 4월 20일 열린 18대 국회 마지막 국방위원회에서 의원정족수 미달로 자동 폐기된 국방개혁법안을 20일쯤 재상정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당시 대선을 앞둔 상황이라 정치적인 이유로 심의조차 못하고 개혁법안이 폐기됐다고 보고 있지만 일방적인 추진방식으로 인한 불신과 반발, 법안의 문제점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시키지 못했던 것이 더 컸다.
국방부는 이번에는 지난 국회에서 제출됐던 5개 법안 가운데 상부지휘구조문제를 담은 국군조직법만 상정할 계획이다. 이 법안은 가장 논란이 많았던 사안이라 벌써부터 예비역 장성들을 중심으로 또다시 반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불필요한 소모전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의견수렴에 나설 필요가 있다.
최현수 군사전문 기사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