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석 국장기자의 London Eye] 진정한 양성평등의 길
입력 2012-08-07 18:54
10여년 전의 일이다. 정부부처를 출입할 때 필리핀 인사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접견실에서 우리를 맞은 필리핀 인사국 고위관리 5∼6명은 모두 여성이었다. 우리 쪽은 출입기자단과 정부관료 모두 남성이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한 필리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라고 했다. 당시 우리에게 차를 날랐던 직원이 남성이라는 것도 뚜렷이 기억한다.
열대야에 시달리며 런던올림픽 금메달로 갈증을 푸는 독자들은 모두 보셨으리라 믿는다. 시상대 옆에서 금·은·동메달을 쟁반에 받쳐 들고 대기하고 있는 도우미가 모두 ‘남성’인 것을. 이 경기장만 그런가하고 여기저기 다녀보니 모두 남성이었다. 그동안 시상식 도우미하면 개최국 전통의상을 뽐내며 당당히 서 있는 늘씬한 여성들인 것과는 대조되는 생경스런 모습이었다.
고대 올림픽 재현을 꿈꾼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이 “올림픽에서 여성의 역할은 메달을 나르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 불과 100년 전이지만 이를 두고 상전벽해란 말이 적절할지 모르겠다.
‘클린IOC’와 함께 올림픽 양성평등을 모토로 내건 자크 로게 IOC위원장은 임기 내 마지막 올림픽인 런던대회에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회에는 여자복싱이 새 종목으로 들어왔다. 유도 태권도 레슬링에 이어 투기 종목에도 여성이 당당히 참가하게 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브루나이 등 이슬람 국가들도 이번에 처음 여성을 올림픽에 출전시켰다. 이슬람국가인 카타르는 입장식 기수마저 여성을 내보내는 파격을 연출했다.
다음 올림픽 때는 여자럭비가 정식종목으로 들어올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대회에서 퇴출됐던 여자 종목인 소프트볼은 야구와 짝을 이룬 단일 경기단체로 올림픽 재입성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숫자의 균형, 물리적 균형에만 치우친 양성평등에는 썩 내키지 않은 구석이 있다. 남녀는 성별의 차이에 따른 각자의 아름다움이 따로 있다. 특히 여자복싱의 경우 여성의 신체적 조건을 고려하면 우려되는 바 크다. 여성의 두개골 두께는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얇아 충격에 약하다.
양성평등이 극단적으로 치달아 언젠가 남자 리듬체조와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도 하자고 하는 날이 올까 두렵다.
런던=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