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쪽방촌 주민 체감온도는 40도+α… ˝정부·교회, 폭염 식힐 긴급구호를˝
입력 2012-08-07 15:50
취약계층 전문 사역자들 현장서 SOS
1994년 이후 최악의 폭염이 이어지면서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역자들이 흘리는 땀도 몇 배 늘었다. 하지만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쉼터와 샤워·세탁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12일째 33도를 넘어선 7일 오전 10시, 서울 남대문로5가 남대문지역상담센터 앞은 포장도로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호흡조차 곤란했다. 건물 구조상 환기가 어렵고 선풍기 외 냉방장치가 없는 쪽방은 한낮 기온이 40도가 넘는 곳도 많았다.
사단법인 푸른나눔이 서울시 위탁을 받아 운영 중인 남대문지역상담센터 지하 1층에는 더위를 피해 피난 온 쪽방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750여명의 남대문 쪽방주민 가운데 하루 200여명이 센터 내 샤워실과 세탁실을 이용하고 있다. 센터에서 일하는 박모 간호사는 “여름철엔 미지근한 물로 몸을 씻고 세탁을 자주 해야 각종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며 “청결 유지가 여름철 건강에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창신동 동대문역 뒤편 등대교회(김양옥 목사)에도 10여명의 노숙인과 쪽방주민이 약 99㎡(30평) 넓이의 교회 본당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교회는 오전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샤워·세탁시설 및 무더위 쉼터를 지역 내 노숙인과 쪽방 거주민, 독거노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폭행·음주·흡연 금지 등 교회의 기본 원칙만 지키면 누구나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쪽방주민 이모(52)씨는 “공기 자체가 더워 선풍기는 무용지물이고 찬물로 샤워를 해도 10분을 못 버틴다”며 “그나마 에어컨 틀어주는 교회 덕에 살 만하다”고 말했다. 노숙인 김모(57)씨는 “쪽방주민은 그래도 샤워나 세탁이라도 할 수 있지만 우리 같은 노숙인은 교회나 쉼터가 없으면 씻는 일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시설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다. 대부분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들은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교회의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없으면 불상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루 150여명의 노숙인과 쪽방 주민이 세탁과 샤워시설을 이용하는 영등포동 광야교회 관계자는 60세 이상 건강취약 계층을 위한 경로당(마을회관) 건립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영등포역 인근 쪽방에는 현재 200여명의 독거노인이 거주 중이지만 광야교회에 마련된 무더위 쉼터는 10명이 이용하기에도 비좁다.
정병창 영등포쪽방상담소 사무부장은 “지난 5년간 정부기관에 경로당 건립을 요구했지만 아직 답이 없다”면서 “지역 교회들이 혹서·혹한기만이라도 지역 내 취약계층을 위해 교회를 개방해준다면 주변 노숙인과 쪽방주민, 독거노인들이 건강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서울시에 노숙인 쉼터 지정을 신청했던 등대교회는 ‘자가 건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려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노숙인 지원 시설은 시설 운영의 영속성과 지원금 회수 등의 문제로 자체 건물이 있는 경우에만 지정해주고 있다. 김양옥 목사는 “지인과 지역노회, 우리보다 더 어려운 교회의 도움으로 쉼터(교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여름과 겨울은 수도세(20만원)와 난방비(60만원) 대는 것조차 버겁다”며 “사회적 약자에게 실제적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정부가 관계법령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