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외국인투자 옴부즈만 안충영 박사 ˝재정수요 늘어나는 나라, 곳간부터 채워야 옳다˝

입력 2012-08-07 18:32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현재 3%대 후반인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30년 1%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고, 그 원인으로 한국의 저출산·고령화를 꼽았다. 잠재성장률은 물가상승 압력 없이 생산요소(노동과 자본)를 최대한 활용했을 때 달성 가능한 생산능력이다. 잠재성장률 하락, 즉 생산능력의 저하를 막자면 생산요소를 늘리거나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국내 기업들의 해외진출 증가로 대내외 외국인직접투자(FDI·Foreign Direct Investment)의 불균형구조가 확대되고 있어 자본스톡(축적자본량)의 감소를 되레 부추기고 있다. 이에 국내 FDI를 유치하고 추가 확대 투자를 유도하는 역할을 총괄하는 외국인투자(이하 ‘외투’) 옴부즈만 안충영(71) 박사를 만나 ‘대내외 FDI 불균형구조 극복문제’를 비롯해 ‘신성장동력 확충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7일 서울 염곡동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내 외투옴부즈만실에서 이루어졌다.

“외투옴부즈만제도는 한국 고유모델”

안 박사는 만나자마자 유럽 재정위기, 중국 경제성장률 하락, 미국 경제회복 지연 등 글로벌 경기침체 도미노 현상에 대해 우려했다. 그간 한국의 경기회복을 견인했던 수출마저도 지난달 7월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8.8%를 기록, 올 우리 경제는 수출부진에 따른 성장률 위축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기침체기일수록 투자 증진, 특히 국내 FDI 증가도 요청되는데 이와 관련해 업무를 총괄하는 외투옴부즈만제도는 좀 낯선 이름이다.

“외투옴부즈만제도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더 많은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만들어낸 한국의 고유모델이다. 외투기업의 경영고충 해결을 통해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투자유치를 지원하기 위해 1999년 10월 고충처리기구가 설치됐고, 외투옴부즈만은 이 기구의 장으로 대통령이 직접 위촉한다(외투촉진법 제15조).”

-외투옴부즈만제도의 해외진출도 이어지고 있다던데.

“그렇다. 외투옴부즈만제도의 성과가 알려지면서 러시아 브라질 등이 이 제도를 벤치마킹해 운용하고 있고 유엔 등으로부터 제도 소개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안 박사는 2006년부터 외투옴부즈만을 맡아왔는데 가장 인상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2007년 정부가 ‘동탄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그곳에 있던 외투기업 18곳이 떼밀려나는 사태에 직면했다. 현장을 방문한 결과 대부분의 기업이 무공해, 첨단 분야의 공장이라는 점을 고려해 계속해서 존치할 수 있도록 관련 부처와 협의했다. 이뿐 아니라 아파트단지가 들어섬에 따라 오르게 된 지가 증가분에 대한 존치분담금도 기업들로서는 큰 부담이었기 때문에 용도변경을 전제로 90% 이상 삭감해주기로 했다.”

-외투옴부즈만은 ‘투자기업-국가 간 분쟁’(ISD)의 사전 조정자 역할도 한다는 뜻인가.

“지속적으로 투자 확대를 꾀해온 외투기업이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된 사태는 한국에 대한 투자의 예측 가능성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막아야 할 사항이다. 지금까지 국내 FDI는 신규와 추가 투자가 반반을 점하고 있어 투자환경에 대한 불확실성 제거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외투옴부즈만이 투자기업-국가 간 분쟁의 사전 조정에도 한몫하는 셈이다.”

“FDI 확대 없이는 FTA 성공 장담 못해”

-대내외 FDI의 불균형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데.

“한국 기업의 FDI 규모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배 이상으로 늘어났으며 이후 해마다 급증세인데 외투기업의 국내 FDI는 2000년대 초반 90억 달러 수준 이후 매년 감소세다(그래픽 참조). 지난해 해외투자는 257억7000만 달러, 국내 FDI는 65억5000만 달러로 불균형규모가 192억 달러나 된다. 이는 국내 자본스톡이 그만큼 줄었다는 뜻이다.”

-그 같은 불균형구조가 확산되고 있음은 결국 한국에 대한 투자유인이 약화되고 있다는 뜻일 텐데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외투기업들이 중국에 비해 한국의 내수시장이 작다고 판단해 한국보다 중국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한국의 고임금과 강성 노조에 대한 불만이다. 한국의 기술력을 평가할 경우 고임금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투자를 꺼리는 주된 원인이다. 셋째로 높은 땅값이다.”

-해법도 결국 이 세 가지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렇다. 두 번째 요인은 불법파업을 없애는 제도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세 번째의 높은 땅값 문제는 지방 산업단지로의 유치가 적극 고려되고 있으나 지방은 인력확보가 어렵고 금융서비스 등의 인프라가 약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투자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정비를 위해 기존의 인센티브 제도를 정교하게 다듬는 한편 예측가능성 제고, 노동관계 안정, 적정산업용지 공급, 글로벌 스탠더드에 입각한 조세·관세 운용 등이 관건이다.”

-2010년 현재 전 산업에서 외투기업이 차지하는 고용창출 비중은 4.2%로 비교적 낮은 편인데 FDI에 그토록 힘을 쏟을 필요가 있나.

“그렇지 않다. 현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유럽연합(EU) FTA 등이 제대로 된 효과를 보려면 FDI가 매년 20억∼30억 달러 이상 늘어야 한다. 정부가 내놓은 FTA의 경제효과 시뮬레이션 결과도 그와 같은 내용을 전제로 계산한 것이다. FDI 확대 없이는 FTA의 성공 가능성도 장담하기 어렵다.”

“신성장동력 확충에도 超국경투자 활용해야”

-요즘 자주 거론되는 차세대 신성장동력 구축과 FDI와의 연관성은 있나.

“오늘날 세계경제는 한곳에서 생산을 완료하기보다 공정별로 다국적 생산을 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FDI를 포함한 초(超)국경투자는 모든 산업에서 논의되고 추구돼야 할 주제다. 신성장동력과 관련해서도 다르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의료서비스, 관광서비스, 제약산업, 교육서비스 등이다.”

-최근 들어 한국을 찾는 외국인 환자가 늘고, 외국 연구기관이 한국에 이전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인가.

“한국은 의료서비스를 더욱 확장할 필요가 있다. 2009년 현재 한국을 찾은 해외환자는 6만명에 불과했으나 태국은 139만명, 싱가포르는 63만명이었다. 양질의 의료서비스 체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다. 관광분야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다. 2020년 2000만명 관광객 유치를 계획한다면 그에 걸맞은 투자인프라가 필요하다. 이를 국내 자본으로만 추진할 것이 아니라 외국관광객의 모국자본과 결합함으로써 맞춤형 관광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최근 신재생에너지, 태양광 분야에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벨기에의 종합화학회사 솔베이그룹이 글로벌 연구개발(R&D)본부를 이화여대 캠퍼스 안에 완전 이전키로 한 것도 주목되는 사례다. 한국의 연구인력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높다는 징표이다. 그 외 제약분야의 임상실험 등도 성공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기대된다. 이 같은 분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FDI 확대를 통한 자본스톡 제고, 일자리 창출 등과 더불어 신성장동력 구축이 가능할 것이다.”

“동북아투자공동체 탄생할 것”

-지난 5월 한·중·일 투자협정이 체결됐는데 앞으로 역내에는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지난해 국내 FDI 규모를 보면 미국 기업은 소폭 늘었고, EU는 30%, 일본은 216% 늘었다.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도 있었지만 특히 일본은 해외첨단산업 이전과 관련해 한국을 최적지로 보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비록 한국이 고임금국가라는 대목은 단점이지만 기술력과 숙련도가 높고 한·일 간 거리가 짧아 제품 공급시간이 단축된다는 이점이 있다. 한·중·일 투자협정은 이 같은 방향을 더욱 확산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한·중·일은 공통의 생산기준을 맞추면서 동북아투자공동체로 비상할 것으로 예상한다.”

-외교통상부가 발표한 ‘한·중·일 협력(1999∼2012)’에 따르면 3국의 통상협력은 크게 늘고 있다. 3국간 교역총액은 1999년 1300억 달러에서 2011년 6900억 달러로 5배 이상으로 늘었다. 하지만 3국간 상호투자는 아직 미약하다.

“현재 한·중·일 3국간 상호투자는 세 나라의 대외투자 총액의 6%에 불과하다. 아직은 규모가 작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상호 투자, 즉 한·중·일 공동투자 가능성은 그만큼 크다고 하겠다. 동북아투자공동체는 이제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면 성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예컨대 연평도 앞바다에 3국이 공동으로 투자하는 해상레저단지를 만든다면 한반도 안보에도 도움에 될 것이며 일자리 창출을 비롯해 글로벌 경기침체 극복 등을 위한 3국간 협력은 확대될 것이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복지논쟁, 경제민주화 등의 주장이 쏟아지고 있는데 어찌 보나.

“복지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가 처한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감안할 때 당연히 중시돼야 할 문제이며 그와 관련해 많은 재원이 필요할 것이다. 얼마를 더 증액해야 하며 어떤 분야에 집중할 것인지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정부 재정의 지출수요가 늘고 있는 데 비해 나라 곳간을 채우려는 논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쓸 일 많은 나라의 곳간부터 채워야 하는데 모두가 쓸 궁리만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를 위해서라도 FDI 확대를 통한 고용창출, 신성장동력 구축 등이 최우선과제가 되어야 한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서는 기업(corporation)은 어원적으로도 협력·연대(cooperation)라는 말과 같은 뿌리임을 감안할 때 사회적 협력을 훼손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쪽으로 풀어 가면 될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안 박사는 이번 대선을 통해 누가 정권을 잡든 한국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잠재성장률 하락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이 독자적으로 구현한 외투옴부즈만제도가 FDI 확대와 신성장동력 구축에 앞장설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충영은

현재 외국인투자옴부즈만(대통령 위촉), 중앙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한국국제경제학회장, 조흥은행 이사회의장 등을 역임했다. 경북대, 미 하와이대 및 오하이오주립대(경제학 박사)에서 연구했다. 저서 ‘현대동아시아경제론’(이와나미서점, 2000)으로 일본총리실 산하 총합연구개발기구(MIRA) 제정 제1회 NIRA오키다(大來) 정책연구상을 받았다. 그 외 ‘Review of Economics and Statics’ ‘European Economic Review’ 등 세계적인 학술지 게재 논문을 비롯, 다수의 논저가 있다.

그는 국내 경제학자 가운데 영어를 가장 잘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 비결을 물었더니 중고교 때부터 영어를 좋아했는데 특히 대학 진학 후 영어성경을 열심히 읽었던 것이 가장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ROTC 1기로 임관한 안충영은 탁월한 영어실력 덕분에 통역장교로 뽑혔으며 이어 미 하와이대학 동아시아센터 장학생(East Asia Center Program)으로 선발된 바 있다.

한편 안 박사는 이날 한·일 경제협력을 촉진시킨 공로로 ‘2012년 일본 외무대신 표창’을 받았다.

만난사람=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