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정년연장, 지레 안 된다고만 말고

입력 2012-08-07 18:53


“年功給 중심 임금체계에 성과급 적용비율 의무화 도입하면 기업 부담도 줄어들 것”

정치의 계절이다. 표심을 의식한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인물평이 난무해 시절의 도래를 실감케 한다. 문제는 정치권이 솔깃한 공약을 거론하고는 있지만 과연 추진력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저출산·고령사회를 대비하자며 내놓은 정년연장 카드도 마찬가지다.

일찌감치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지난 총선 공약으로 ‘정년 60세안’을 내놓았으며 최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60세 정년 의무화”를 주장했다. 나아가 황 대표는 “2020년에는 70세까지 정년을 늘려 궁극적으로 정년제도가 무색해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년연장 논의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일본은 제1차 베이비붐 세대(1947∼49년생)가 60세 정년을 맞던 2007년보다 한 해 앞서 ‘65세 정년 의무화 규정’을 담은 ‘고연령자고용안정법개정안’을 시행했으나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1955∼63년) 정년퇴직은 2010년부터 이미 시작됐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논의를 하고 입법을 추진해도 실질적인 정년연장은 빨라야 3∼5년 이후가 될 것이다. 단숨에 적용하기보다 단계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65세 정년 의무화’를 위해 2003년부터 논의를 시작했고 2006년부터 개정안이 시행됐으나 의무화 완료시기는 2013년 3월 말이다.

또 의무화 방식은 정년제 폐지, 정년연장, 퇴직 후 재고용(계속고용제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부담을 고려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업들의 의무화 이행률은 95.7%에 이르나 재고용을 택한 경우가 82.6%로 가장 많았고 정년연장은 14.6%, 정년 폐지는 겨우 2.8%였다.

정년 폐지에는 거부감이 많은 모양이다. 정년연장도 주로 인력난이 심한 중소기업 등에서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재고용은 정년퇴직 후 노사합의에 따른 조건에 부합하는 희망 근로자에 한해 이루어지며 임금도 정부보조금 등을 포함해 종전의 60∼70%로 기업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핵심은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기존의 연공급(年功給) 체계다. 임금체계가 근속연수보다 성과급(직무급) 중심이라면 기업은 정년연장에 따른 부담을 그리 걱정할 이유가 없다. ‘일본의 65세 정년 의무화’는 우리로서는 분명 부러운 대목이나 급여체계를 개선하지 못한 채 시행했기에 역시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지금 정년연장과 관련해 우리 재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급여체계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지만 우선 연공급 중심체계를 연공급과 성과급의 투 트랙(병렬체계)으로 전환하고 단계적으로 성과급 비중을 높여간다면 부담을 상대적으로 줄임으로써 기업이 원하는 효율성은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정년연장 의무화를 연령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했는데 우리는 단계적 적용과 더불어 연공급과 성과급의 투 트랙 적용비율 교정 의무화를 추가한다면 기업 부담 최소화도 가능할 것이다. 다만 성과급 체계는 무수히 많은 직무군(群)에 따라 각각 다를 것이므로 정부와 재계가 연구자금을 함께 출연, 세부 내역을 치밀하게 구축해가는 일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머잖아 도래할 인구감소시대를 앞두고 재계를 비롯, 전문가들까지도 정년연장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청년실업은 어쩌고 고임금 고령자의 정년연장이냐’ ‘고령화 문제를 왜 기업에 떠넘기느냐’ 등의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느냐’는 말처럼 걱정만 하고 있으면 한국은 인구감소시대의 부적응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더구나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청년실업 해소와 정년연장은 대립적이지 않다. 유럽 국가들이 지난 1980년대를 전후해 청년실업 해소 차원에서 조기 은퇴를 장려했으나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정치권은 정년연장을 공약으로만 내세울 게 아니라 좀 더 치밀하게 논의하기 바란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