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병 원인 지방은 공공의 적? 세포치료제 성분도 많이 함유

입력 2012-08-06 19:07


의학자들 지방조직에서 난치병 해결 열쇠 찾는 중

우리 몸의 지방은 각종 성인병의 주원인으로 꼽히며 흔히 ‘공공의 적’ 취급을 받는다. 과연 지방은 건강을 위해 없애야 할, 쓸데없는 조직이기만 한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답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의학자들은 요즘 지방조직에서 인류의 최대 고민거리를 해결할 열쇠를 찾고 있다. 난치병 해결사로 각광받는 성체 줄기세포는 그중 하나일 뿐이다. 지방에는 골수 못지않게 성체 줄기세포가 풍부하게 들어 있고, 이밖에도 심유모세포, 면역세포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세포치료제 후보들이 많다. 이에 따라 비만 치료 및 체형 교정을 위해 지방흡입술로 뽑은 지방조직을 통째로 동결 보관했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해동시켜 재활용하는 ‘지방은행’ 설립도 추진되고 있다.

우리 몸의 골칫덩어리 지방을 다시 봐야 할 경우를 국내 최대 비만 전문병원 디올클리닉 장지연 원장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장 원장은 이제 막 미국에서 부상하는 지방은행사업을 9월 국내에서도 본격화할 계획이다.

◇지방이 없으면 더 빨리 늙는다=보통 지방이라고 하면 많은 게 걱정이지, 적은 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여성의학자들은 지방이 너무 적으면 에스트로겐, 즉 여성 호르몬이 줄어 골다공증이 촉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주로 난소에서 생성되는 에스트로겐은 지방세포와 부신에서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지방이 너무 적으면 체내 에스트로겐 수치도 줄어든다. 지방의 이런 에스트로겐 조절 기능은 나이가 들어 폐경으로 인해 난소 기능이 떨어졌을 때 더욱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에스트로겐은 우리 몸의 뼈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이기도 하다. 에스트로겐이 줄어들면 뼈가 약해지는 것이다.

골다공증은 뼈를 없애는 세포(파골세포)의 활동이 뼈를 만드는 세포(조골세포)보다 우세해져서 작은 충격에도 뼈가 쉽게 부러지는 병이다. 또 에스트로겐은 파골세포의 수를 줄이는 작용을 한다. 에스트로겐 분비가 줄어들게 되면 상대적으로 파골세포가 늘어나 골다공증이 촉진되는 이유다.

얼굴에 나타나는 노화는 크게 3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피하지방의 감소, 콜라겐(단백질)의 감소, 중력에 의한 피부와 악안면(턱과 얼굴) 유착 부위의 늘어짐 등이다. 이 중 피하지방의 감소에 의한 게 약 50%를 차지한다. 또 체중이 줄기 시작할 때는 얼굴부터 살이 빠진 뒤 복부와 허벅지의 살이 빠지며, 살이 찌기 시작할 때는 반대 순서로 살이 오른다. 따라서 다이어트를 무리하게 하면 몸매는 20대인데, 얼굴은 40대처럼 늙어 보이기 쉽다.

요즘 피부과와 성형외과에서는 지방의 이런 역할에 착안해 항(抗)노화 시술에 지방을 활용하고 있다. 지방조직세포를 피하에 주입함으로써 얼굴의 나이를 가늠하는 중요한 부위인 눈 위아래나 볼, 이마 등이 도드라져 보이게 해줌으로써 ‘노(老)티’를 지우는 시술이다.

◇줄기세포의 보고…지방보관사업 부상=지방은행의 목적은 이렇듯 지방의 좋은 점만을 가려서 쓰자는 것이다. 특히 체형교정을 위해 뽑은 복부지방을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두었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지방조직 보관사업이 뜨고 있다.

지방은행이란 돈을 은행에 맡겨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듯 지금은 쓸데가 없는 지방을 추출해 보관해두었다가 나중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조직이다. 비슷한 것으로 장차 줄기세포과 면역세포들을 분리해 쓰자는 생각으로 신생아의 탯줄 혈액을 보관해주는 제대혈은행과, 아예 처음부터 줄기세포만을 따로 분리해 냉동 보관하는 줄기세포은행이 있다. 군살 없는 ‘몸짱’이 각광받는 시대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뱃살’의 변신이 시작된 것이다.

지방에 대한 이 같은 인식 변화는 처음 발견했을 때 단순히 불을 지피는 용도로만 쓰이던 석유(원유)가 점차 가공기술의 발달과 함께 필요에 맞게 가솔린, 등유, 경유, 중질유 등으로 분리·정제된 것과 같은 과정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장지연 디올클리닉 원장은 “지방은행에 자기 지방을 맡겨두면 장차 필요할 때 성체 줄기세포 외에도 신체 조직 재생과 혈관 생성, 면역 증진의 첨병 역할을 하는 섬유모세포, 혈관내피세포, 면역세포, 지방전구세포 등을 필요할 때 자유롭게 추출해 쓸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지방이라고 우습게볼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