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현길언] 대선주자들이 밝혀야 할 것
입력 2012-08-06 18:29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과 6·25전쟁에 대한 분명한 입장 밝혀야 한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의 정책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대선 주자로서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할 근본적인 문제는 당사자나 국민이나 후보의 정책을 논의하는 사람들까지 간과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최근 박근혜 후보의 5·16에 대한 입장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대통령으로서 역사의식은 매우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모든 국민들이 대선 주자에게 물어야 할 사항이 있다.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과 6·25전쟁에 대한 입장이다. 이런 질문에 어떤 사람은 한국적 보수와 진보 논리로, 혹은 색깔론을 부추긴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은 이 두 문제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1948년에 수립된 정부의 대통령이고, 내년에 취임할 대통령은 임기 중에 한반도에서 극심한 정치변동이 일어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기에 국정책임자는 두 사안에 분명한 입장을 갖고 국정을 수행해야 국가 혼란을 막을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현재까지 다양한 정치적 입장과 경륜을 가진 자들이 대통령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그들의 치적은 역사가 평가할 일이다. 그런데 그중 몇 분은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과 통일에 대한 애매한 입장을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정부를 ‘태어나지 말아야 할 정부’ ‘부끄러운 정부’라는 식으로 폄하하면서 대통령의 힘으로 역사를 다시 쓰게 하였고, 온갖 방법으로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사업을 벌였다.
어떤 대통령은 6·25전쟁에 대한 애매한 입장을 민족통일 이데올로기로 호도했다. 그래서 현충일에 출국하기도 했고, 나라를 지키다가 전사한 용사들에 대해서 국군통수권자로서 예의를 저버렸던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일은 근본적으로 6·25전쟁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치 전략가인 대통령이 하는 일을 순진한 국민들은 잘 모른다. 아직도 정치인 중에는 6·25전쟁에 대해 음험한 생각을 품고 있는 자들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다가 문제가 제기되면 색깔론을 내세워 본질을 호도한다.
5·16과 4·19에 대한 입장은 통치자로서는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그러나 그 두 사건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정통성 안에서, 또 많은 피를 흘리면서도 국가를 지켰기에 논의가 가능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이룩하지 못했다면, 그러한 국가를 6·25전쟁 때 지키지 못했다면, 4·19나 5·16, 이후에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그동안의 노력과 애씀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전제로 할 때만 그 역사적 의미가 확보된다.
그렇다고 국민들은 대선 후보자들에게 이 문제의 정답을 미리 정해놓고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헌법은 개인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문제는 분명히 자유롭게 자기 입장을 밝히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국가관과 역사관을 확인하고, 표를 찍고, 그렇게 선출된 대통령이 통치한 결과에 함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우려하는 것은 후보들이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유보했다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외면하거나, 배부른 민주주의 국가보다 배고프더라도 통일국가가 더 시급한 과제라는 식으로 국정을 운영할까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은 국가의 정체성과 통일에 대한 입장이 확고해야 한다. 그를 바탕으로 경제·사회·복지 문제도 시작된다. 앞으로 몇 년 동안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급격한 정치변동을 가정한다면 그러한 역사의식은 더욱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통일에 대한 인식이 투철하지 않다면, 통일을 위해서라면 태극기를 한반도기로, 애국가를 아리랑으로 바꿀 수도 있고, 자유와 평등을 기본정신으로 하는 국기도 융통성 있게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한 생각을 가진 자는 자기 정체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현길언 소설가 본질과 현상 편집·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