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천 뒷거래 악습 미봉책으로 안된다

입력 2012-08-06 18:29

수사결과 기다리다 당 신뢰도만 하락할 것

비례대표 공천을 달라며 거액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현영희 의원과 돈을 받은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현기환 전 의원이 어제 새누리당에서 제명됐다. 전날 밤 황우여 당 대표와 경선주자들이 7인 연석회의를 열어 이번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황 대표가 사퇴하고 당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란 합의안이 사태 해결에 미흡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에 임하는 새누리당은 ‘차떼기 정당’ ‘돈 전당대회’의 악몽을 경험한 정당답지 않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지극히 실망스럽다. 대통령이 돼 나라를 이끌어나가겠다며 경선에 나온 후보들도 공천비리 대처 방안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든 당내 선거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잔꾀만 내보여 잿밥에만 관심 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박근혜 경선 후보는 수사 결과에 따라 처리하자고 안이하게 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뒤늦게 용서할 수 없는 범죄 운운하며 마지못해 사과했다. 공천 비리야 어찌됐건 빨리 경선일정을 끝내 대권 후보가 되겠다는 심정을 모르지는 않지만 반복되는 새누리당 돈 정치의 악습을 차단할 일차적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이번 사태도 박 후보 책임이 가장 크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총선 당시 전권을 거머쥔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이번 파문의 당사자인 현기환 전 의원을 비롯한 모든 공천위원을 자신이 임명했기 때문이다. 비상대권을 갖고 전권을 행사한 마당에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큰 꿈을 가진 정치인으로서 비겁한 행위다.

더욱 한심한 것은 황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의 우왕좌왕하는 행태다. 한나라당 시절 깨끗하지 못한 돈으로 선거를 치렀다가 당 사무총장이 구속되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경험하고도 또다시 불거진 공천 뒷거래에 무감각하다고 할 정도로 먼 산 쳐다보듯 아무 대책도 제시하지 않았다.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 당을 쥐락펴락하는 박 후보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진 인사라 박 후보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공천 비리 문제를 고리로 경선을 보이콧하며 자신들의 입지만 강화하려고 시도한 이른바 비박 주자들의 행태도 비난받아야 하지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단안을 못 내린 당 지도부도 자격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러고서도 새누리당이 박 후보의 입김 아래 놓여있다는 세간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돈으로 비례대표 의원 자리를 샀다는 의혹은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대기업이 정당의 대선 승리를 대비해 보험용으로 현찰을 갖다 준 차떼기보다 죄질이 더욱 나쁘다는 것이 국민 여론이다. 공천 비리는 돈으로 국회의원이란 자리와 권력을 사는 파렴치한 행위로 국민주권을 짓밟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현명한 처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