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원제] 올림픽 순차중계의 첫걸음

입력 2012-08-06 18:33


전파낭비, 채널선택권 박탈. 올림픽 같은 빅 스포츠 이벤트가 방송될 때면 공식처럼 제기되는 비판이다. 지상파방송 3사의 중복중계 탓이다. 그런데 이번 런던올림픽은 이런 비난에서 자유롭다. 오랜만에 의기투합한 방송 3사가 합동방송, 순차편성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 방송은 국민적 관심이 큰 스포츠 행사의 경우 모든 방송사가 중계를 하는 바람에 다른 프로그램을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로부터 채널선택권을 박탈하는 폭력 아닌 폭력을 행사해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방송법에 명기된 순차편성 권고(방송법 제76조의5)는 무시되기 일쑤였다. 같은 화면을 캐스터와 해설자만 바꿔 동시 중계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기까지 했다.

아무리 국민적 관심이 큰 경기라도 모든 방송사가 동시에 중계하는 중복편성은 채널선택권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일 뿐 아니라 전파낭비 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올 3월 KBS, MBC, SBS 사장단은 런던올림픽의 중복편성 폐해를 방지하고, 시청자의 보편적 시청권과 채널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합동방송을 하기로 합의했다.

그에 따라 방송 3사는 런던올림픽을 종목별 순차방송, 대한민국 대표팀과 선수가 출전하는 경기 중 결승전과 3·4위전, 준결승, 시상식 등에 ‘2사 생방송 1사 녹화’ 형태의 합동방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수영, 양궁, 배드민턴, 펜싱, 유도, 사격, 탁구, 태권도, 역도 등 12개 종목의 경우 사별로 배정된 종목을 중계방송하고 있다. 두 개의 채널을 보유한 KBS는 주 종목, 주중 경기 중계는 2TV로, 한국이 참여하지 않지만 중계할 만한 경기, 주말 경기, 개·폐막식, 기타 경기는 1TV로 중계하는 원칙을 따르고 있다. 특히 1TV는 매일 오후 다른 채널에서 하지 않는 외국경기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다양성을 추구하고 시청자 선택의 폭을 확대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올림픽 때마다 미흡했던 공영방송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으로 평가된다.

이번 런던올림픽 중계방송은 시청자의 선택권을 확대해주고 있다. 스포츠 중계를 보기 싫은 시청자는 다른 채널을 선택하면 된다. 국민이 관심을 갖는 경기라도 동시에 여러 채널에서 방송되는 폐해가 없어졌다. 최소한 ‘박태환 채널’, ‘장미란 채널’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방송법에 명기된 보편적 시청권을 구현해주고 있는 것이다. 보편적 시청권은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큰 체육경기대회 그 밖의 주요행사 등에 관한 방송을 일반국민이 시청할 수 있는 권리’(방송법 제2조의25)인데 순차중계는 시청자의 이러한 기본권인 ‘볼 권리(시청권)’를 담보해주고 있다.

그간 우리 방송사의 스포츠 중계방송이 과열경쟁과 전파낭비로 비판받은 근본적 이유 중 하나는 방송사 간 합동방송·순차중계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합의를 무시하는 신사답지 못한 행태가 자행돼왔다. 자사 뉴스를 통한 변명과 비판의 이전투구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런 만큼 이번 런던올림픽은 방송 3사의 스포츠 중계방송 발전협의회 구성 후 사실상 최초의 합동방송 대상 종합대회로 큰 의의를 지닌다.

아직까지는 이러한 중계시스템이 순항하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방송사들은 시청자의 보편적 시청권과 채널선택권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분명하게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합동방송·순차편성 방식이어야만 돈의 낭비도 막고 전파의 낭비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이 페어플레이에서 존재 이유를 찾듯 국민적 관심행사의 중계에서도 방송사 간 상호신뢰와 약속에 근거한 신사적인 모습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김원제 유플러스연구소장·성균관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