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용백] 진정한 민생치안은
입력 2012-08-06 18:32
한 달여 전 언론중재위원회에 출석했었다. 경찰의 음주운전 사고 기사 때문이었다. 기사 골자는 ‘경찰관의 음주운전이 줄지 않는 것은 계급강등을 내용으로 하는 인사제도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였다. 경찰은 이에 “반드시 그렇지 않고 자체 음주운전 금지를 강화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중재제도가 있고 항변의 자유가 있으니 경찰이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찰 주장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격’이다. 음주운전자들을 단속하고 사법처리하는 경찰관들이 툭하면 음주운전을 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달에도 충남지방경찰청 총경급 경찰관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됐다. 그는 시치미를 떼다 감찰 과정에서 실토했고, 직위해제됐다. 경찰청은 전날 내부 게시판에 ‘음주운전 주의경보’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했다고 한다. 경찰 스스로도 그 심각성을 방치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언론중재위에서 핏대를 올리던 경찰관들 얼굴이 떠오른다.
과시용 경찰행정은 금물
경찰은 요즘 ‘주폭(酒暴)’ 근절에 올인하는 듯한 인상이다. 주폭 퇴치가 마치 민생치안의 근본 해법인 양 중시되고 있다. 주폭은 술에 취해 벌어지는 폭력행위를 일컫는다. 그러다 보니 광주광역시 한 지구대 경찰관이 음주 시비자의 팔꿈치 뼈를 부러뜨린 사건도 발생했다. 경찰의 음주 단속은 강릉 경포해변 백사장까지 진출했다. 단속 근거가 있는 것처럼 떠들었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다. 경포 백사장의 심야 음주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다.
정작 인명 피해 사건에서 경찰의 허술함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수원 오원춘 사건 때 경찰 112신고 체계의 허점을 피해자 유족과 온 국민이 확인했다. 제주 올레길 여성 살해사건에서도 수사의 허점은 보였다. 경찰은 시신 유기 가능성이 높은 대나무숲 지역을 훑고서도 피해자 시신을 찾지 못했다. 나중에 붙잡힌 범인이 시신 유기장소로 지목하자 다시 가서 시신을 찾았다. 시신은 한참 부패가 진행돼 사인 규명을 어렵게 했다. 경기도 안산의 자동차 부품업체 ㈜SJM에서 벌어진 유혈 폭력사건에 대한 관할 경찰서의 안이한 대처도 물의를 빚는 상황이다.
그래서 주폭 운운하는 경찰의 모습에서 정권 말기 어수선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이런 때 뭔가 과시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민생치안은 경찰의 존립 근거이자 일관된 국가적 목표다. 정권교체에 관계없이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될 사안이다. 대민치안 서비스 확립에 무슨 과시적 장치들이 필요한가.
지켜야 할 것 먼저 지켜야
얘기가 나왔으니 주폭 문제에 덧붙인다. 경찰이 혈안이 돼 잡아들이는 주폭 관련자들은 구속돼도 6개월을 넘기지 않을 잡범들이다. 누범인 그들은 풀려나면 종전 활동 지역에서 다시 활동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을 경찰이 손봤다고 좋아했을 피해자들이 다시 걱정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더욱 포악하고 교묘해진 그들을 경찰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더욱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대선 선거운동이 한창일 연말에도 경찰이 지금의 입장을 견지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형이 쉽게 선고되지도, 집행되지도 않는다. 인권과 생명을 존중해 흉악범에 대해서도 사법적으로 교정과 교화가 궁극적 목표임을 보여준다. 주폭도 엄연한 국민의 행위다. 그렇다면 주폭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무조건 엄단하고 잡아넣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발상이 어느 시대 유물인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경찰은 스스로 지켜야 할 것들을 반드시 지키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언론중재위 조정위원 중 한 분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항변하는 출석 경찰관에게 “경찰이 음주운전 하는 게 옳다는 건 아니죠?”라고.
김용백 사회2부장 yb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