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긴 터널의 꿈, 조용한 영향력

입력 2012-08-06 18:08


얼마 전, 창천감리교회를 담임했던 박춘화 감독님을 모시고 잠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사실 나는 그분을 잘 알지 못하고 깊은 교제를 나눈 적이 없다. 그런데 막상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다. 이 분은 이희호 여사 때문에 고 김대중 대통령과 거의 35년 이상을 교분하며 가족처럼 지내왔다. 과거 김대중 납치사건 때도 이 여사와 함께 눈물로 기도했고 군사정권의 탄압으로 수감 중일 때도 정기적으로 면회를 하고 기도해 주었다. 그리고 매월 이 여사와 함께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DJ와 같은 지방 출신도 아닌데 생사고락을 같이하면서 고난의 길을 걸은 것이다. 그래서 해외를 나갈 때도 기관원들에게 손도장을 찍어야 했고 DJ의 사람이라고 해서 온갖 감시를 받았다.

그런 박해나 감시 속에서도 꾸준히 DJ가 훗날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요, 국가를 경영하는 대통령이 되는 꿈을 가지고 기도를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J는 군사정권의 내란음모죄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며 세 번이나 대선에서 떨어졌다. 그의 꿈은 너무나 어두운 긴 터널을 통과하는 꿈처럼 보였다. 훗날 DJ가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가기로 했을 때 그는 DJ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 조언을 했다. “당신은 정치인으로 은퇴를 하기를 잘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인생과 앞길을 주관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당신을 쓰시겠다고 하면 다시 복귀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눈물로 기도하고 보냈다.

그런데 시대와 역사가 DJ를 부를 때였다. 그때 박 감독님은 “조국과 역사가 당신을 필요할 때다”고 조언하면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게 했고 DJP연대를 하는데도 조용한 영향력을 끼쳤다. 결국 DJ는 대통령에 당선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청와대에 입성할 때 박 감독님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나도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많이 생기는데, 당사자는 얼마나 원수를 보복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절대로 정치 보복을 하지 마세요. 모든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해 보세요. 그러면 온 국민을 감동시키고 통합하며 역사의 새 길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이후에도 매월 청와대에 한 번씩 들어가서 대통령과 이 여사를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 그러다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사 청탁을 비롯해서 이권 문제로 찾아왔겠는가. 그러나 그분은 단 한 건의 이권이나 인사 청탁에 개입하지 않았고 한 푼의 돈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감독님 집에 찾아온 사람들이 너무나 초라하고 검소한 목사관의 모습에 감동을 받고 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 감독님을 너무 우러러 보게 되었다. 그렇게 긴 터널의 꿈이 이루어졌으면 그도 남자인데, 자신을 박해했던 사람들에게 한풀이를 하고 이모저모로 영향을 행사할 수 있었지 않았겠는가. 특히 요즘 시대에 이런 이야기가 내 가슴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아, 이 시대 속에 긴 터널의 꿈을 가슴에 품고 조용한 영향력을 끼치는 지도자가 더욱 절실히 그립다.

<용인 새에덴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