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증시 ‘썰물’ - 채권·예금·연금시장 ‘밀물’ “안전이 최고” 逆 머니 무브 가속

입력 2012-08-05 19:24


돈이 위험자산에서 안전자산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경기 침체가 본격화되자 갈 곳 잃은 목돈들이 예·적금, 채권, 연금 등으로 옮겨가는 ‘역(逆) 머니 무브(money move)’가 활발하다. ‘역 머니 무브’는 시중 자금이 고수익·고위험 자산인 부동산, 증시 등에서 예금이나 채권 등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몰리면서 경기침체가 더욱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우리·하나·신한·IBK기업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정기 예·적금 잔액은 지난달 말 418조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5조원이 늘어났다. 예금은 3.3%, 적금은 10.6% 증가했다. 전체 예금은행의 정기예금액은 지난 5월 기준으로 581조5693억원에 이르러 지난해 말(563조6285억원)보다 3.2% 상승했다.

예·적금 증가세와 달리 가계대출 증가세는 한풀 꺾였다. 5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456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말(455조9000억원)보다 0.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와 2010년 가계대출 총액 증가율이 각각 8.0%와 7.8%에 달했던 것에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 누가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려고 하겠느냐”며 “투자를 하지 않으니 대출이 줄어드는 것이고 여유자금은 안전한 은행 예·적금으로 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 머니 무브’는 증권시장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주식 거래량은 급감하는 반면 채권 인기는 치솟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월 한 달 동안 채권시장의 거래액은 520조7209억원으로 지난해 12월(434조4508억원)에 비해 19.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주식시장 거래액은 103조4427억원에서 94조693억원으로 줄었다. 펀드에서도 주식형이 지고 채권형이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다 투자처로 주목받지 못하던 보험에까지 자금이 몰리고 있다. 전통적 보험인 ‘위험대비 보험’보다 ‘저축성 보험’의 가입이 늘고 있다. 생명보험사의 저축성 보험은 올 들어 5월까지 1조6000억원 넘게 증가했다.

생보업계에서는 이런 추세라면 올 한 해에만 4조원에 달하는 돈이 저축성 보험에 몰릴 것으로 본다. 지난해 저축성 보험 가입액이 1조9000억원 늘어난 것과 비교된다.

유동자산이 적은 대신 부동산을 소유한 고령층은 주택연금(주택을 담보로 노후생활자금을 받는 금융상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부동산시장 침체가 길어지면서 이익을 기대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주택연금 신규가입은 237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8.1%(1336건) 늘어났다. 하루 평균 가입건수도 지난해 11.0건에서 올해 19.3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심해지면 소비와 투자가 위축돼 침체기가 길어질 수 있다”며 “세계 경제가 이른 시일에 회복되기 힘들어 이런 현상이 상당시간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