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안녕하십니까-(1부) 비상등 켜진 개인의 정신세계] (3) 사회적 낙인에 두 번 우는 조현병 환자
입력 2012-08-05 22:23
조현병 환자 33만명… ‘불치병’ 편견에 온갖 불이익
#1. 2년 전 조현병(옛 정신분열병)으로 정신과 병동에 입원한 적이 있는 직장 여성 A씨(26). 당시 그는 4년 전 부모가 가입해 둔 보험에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정신장애는 입원비 지급에서 제외된다는 보험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한 푼도 지급받지 못했다. A씨는 한차례 입원 치료 이후 재발이 없었고 직장을 다니며 별 문제 없이 지내고 있다. 재발을 막기 위해 소량의 약물 치료만 받고 있을 뿐이다.
A씨는 최근 생명보험 상품에 새로 가입하려 했지만 상담단계에서 거절당했다. 정신장애로 약을 복용할 경우 심신미약자로 분류돼 보험계약이 안 되기 때문이다.
#2. 30대 남성 B씨는 조현병을 앓았으나 수년 이상 안정상태가 유지돼 취직자리를 알아봤다. 정신병력 탓에 면접시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등 수차례 고배를 마셔야 했다. 각고 노력 끝에 올 초 대기업에 취직한 B씨는 적응을 잘하고 병 재발도 없었으나 업무량이 늘면서 불면증이 생겼다. 결국 회사에 병가를 내고 정신과에 단기간 입원했는데 며칠 뒤 회사 인사 담당자가 병원으로 주치의를 찾아와 ‘B씨의 과거 병력을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주치의는 “B씨가 직장에서 업무상 과실이나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데 정신과 입원 사실만으로 이렇게 한 걸 보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여전히 존재함을 실감했다”고 털어놨다.
두 사례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편견과 낙인을 보여준다. 조현병은 정신분열병의 새 병명이다. ‘마음이 찢어지고 갈라진 병’이라는 뜻의 정신분열병이 주는 부정적 뉘앙스와 이로 인한 근거없는 편견과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관련 의학회가 3년여 노력 끝에 지난해 말 병명 개정을 이뤄냈다.
‘조현(調絃)’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는 뜻이다. 최신 연구에서 이 질병 원인이 뇌신경망 이상으로 밝혀짐에 따라 뇌신경망이 느슨하거나 단단하지 않게 적절히 조율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악기가 좋은 소리를 내듯 병으로 인한 정신의 부조화를 치료로 다스리면 정상생활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권준수 교수는 5일 “병명을 바꾸는 등 의료계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치병’이라거나 ‘격리 수용 대상’이라는 주홍글씨는 환자와 가족들에게서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8∼74세 60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질환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현병과 관련질환(조현정동장애, 조현형인격장애 등)을 평생 한번이라도 앓게 되는 평생 유병률은 0.6%(남성 0.3%, 여성 0.9%)다. 2006년 당시 조사치(0.5%)보다 20% 증가했다. 평생 유병률을 근거로 추산한 국내 조현병 환자는 약 33만명이다. 이 중 13만명 정도만이 정신보건 및 사회복귀시설 등에서 관리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내 정신의료기관과 요양시설 입원 환자의 절반 이상(55.8%)이 조현병 환자로 분류된다. 격리 위주 환자 관리는 사회적 부담 가중과 함께 조현병 환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여자간호대가 19세 이상 대학생 및 성인 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태도 조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해 준다. 이들은 조현병 과거력이 있는 사람과 가족의 결혼에 대해 찬성하지 않으며(최고 5점 중 3.58점) 방을 세 줄 수 없고(3.34점), 고용주라면 채용하지 않겠다(3.17점)고 답했다. 또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을지라도 일반인과 같이 대우할 수 없으며(2.90점) 자신 동네에 정신질환자 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겠다(2.82점)고 답했다.
조현병에 대한 편견이 상존하는 이유에 대해선 일부 정신질환 보호시설의 폐쇄적이고 열악한 환경(3.09점)이 가장 많이 꼽혔다. 일반인을 위한 정신건강프로그램 및 교육 부족(3.08점),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 행위 관련 뉴스(3.00점), TV 드라마나 기타 프로그램에서 연출되는 정신병동의 혼란스럽고 과장된 분위기(2.97점), 정신질환 치료법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2.96점) 등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취업, 교육, 보험가입, 면허자격 제한 등 사회 전반에서 이뤄지고 있는 불이익과 차별 관행을 바꾸는 데 방해가 되고 있다. 편견은 병 치료 자체를 어렵게 하기도 한다. 조현병 치료에서 조기 치료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재발 방지다. 재발을 막으려면 약물을 꾸준히 복용해야 하는데, 주변의 편견과 오해로 인해 환자가 자신의 질병을 부인하고 치료를 중단하는 일이 적지 않다.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높다는 것도 오해다. 검찰이 발간한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일반인 범죄율은 2.5%이지만 정신질환자 범죄율은 1.8%에 불과하다.
한국정신장애연대 권오용(변호사) 사무총장은 “조현병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없애려면 이들이 격리 수용 대상이 아니라 사회에서 더불어 살 수 있는 구성원이라는 인식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편견과 낙인을 줄이는 방향으로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박종익 교수는 “정신질환자 자격에 대해 굳이 제한이 필요하다면 포괄적 제한에서 개별적 제한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관련 일을 하는 시점에 지장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 판단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