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막장 루저들의 엉뚱하고 기발한 블랙코미디 연극 ‘슬픈대호’

입력 2012-08-05 18:26


어둠 속에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바늘 소리. 불이 켜지면 테이프를 온 몸에 두른 인질과 그를 감시하는 초초한 인질범이 있다. 인질범은 대통령 후보를 테러하고 쫓기다 무작정 시계방으로 뛰어들었다. 두 사람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똑같이 대호. 테러용의자 심대호와 채무에 허덕이던 시계방 주인 강대호는 인질범과 인질로 그렇게 만났다.

그런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범인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 30대에 유부녀를 사랑한 죄로 4년 복역, 출소 후 그녀를 만나러 갔다가 다시 폭행죄로 징역 7년, 보호감호 7년을 지냈다.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한 심대호는 여자를 한 번 만나기 위해 인질극을 벌이는 중이다.

강대호의 삶도 인질범 못지않게 꼬였다. 겨우 시계방을 운영하지만 채무에 허덕이다 더 이상 돌파구가 없자 여기저기 보험을 들었다. 누군가 자신을 죽여줬으면 하는데 때마침 인질범이 들어왔다. 그는 인질범에게 뜻밖의 요청을 한다.

둘이 서로에게 동화돼가는 동안, 테러사건은 본질과 점점 멀어지며 미디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으로 사건을 규정하기 바쁘다. 북한도 뛰어든다.

두 사람의 사연은 애잔하지만 연극 ‘슬픈대호’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경쾌하고 즐겁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인질범이 “아나(‘여기 있다’는 뜻)”하며 잔을 건네자, 서울 토박이인 인질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범인에게 다가가 ‘안는’ 장면이 그런 것이다. KBS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였던 ‘서울메이트’를 연상시키는 웃음코드다.

이 연극은 망치를 들고 주변을 배회했다는 이유로 대통령 테러 혐의를 받고 경찰에 연행된 노숙자의 실제 사건을 토대로 했다. 극을 쓰고 연출한 극단 차이무의 민복기 대표는 “빚에 시달리는 가장이 청부업자를 사서 자기 다리를 자르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여기에 테러 혐의로 연행된 노숙자 사건을 접목해 청부업자 대신 심대호라는 인물로 대치했다”고 소개했다.

인질 역은 개그맨 문천식이 맡았다. 이번이 두 번째 연극 출연이다. 인질범 역은 ‘늘근도둑이야기’ 등의 작품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이중옥. 두 사람의 호흡이 좋다.

또 한 명의 출연자인 여배우 공상아는 1인 12역에 도전한다. 경상도·북한 사투리 등을 구사하며 매 장면마다 유쾌한 웃음을 준다. 9월2일까지. 서울 동숭동 아트원씨어터 3관(02-762-0010).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