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기태] 저작권 오·남용을 경계한다

입력 2012-08-05 20:14


한국저작권위원회가 내놓은 ‘최근 3년간 저작권침해사범 단속현황’ 자료를 보면 저작권 침해사례 건수가 2010년 2만9356건에서 2011년 3만6852건으로 7496건 증가했다. 1987년 새로운 저작권법이 시행되기 시작한 지 25년이 흘렀고, 교과서에서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저작권 보호를 외치는 메시지가 즐비한데도 저작권 침해사범은 줄지 않고 있다니 어찌된 일일까.

남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명백하더라도 저작권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이 가능한 저작권법 규정을 감안한다면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과거에도 수많은 침해사례가 있었음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또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다”란 속설이 용인되는 우리 전통사회 분위기 속에서 글 도둑 또한 도둑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설혹 자기 글이 도둑맞은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체면상 드러내놓고 싸우는 것을 피하다보니 법정에까지 가서 흑백을 가리려는 적극적인 노력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고소장부터 내고 보는 분위기

어디 그뿐인가. 재판을 하게 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명예와 직결되는 정신적 노고의 산물인 저작물을 법적 문제로 확대시키고 싶지 않다는 의식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저작권 분쟁이 당사자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법률적으로 해결되기보다는 소극적 항의나 합의에 의해 해결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제 저작권자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본의 아니게 범법자로 전락하는 저작물 이용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저작권 침해 여부를 따지려면 독창적인 부분만 가지고 비교하되 그것의 ‘의거성’과 ‘실질적 유사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무조건 고소장부터 내고 보는 권리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 어느덧 저작권 침해문제뿐 아니라 권리의 오용 또는 남용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저작권 제도는 최초로 만들어 낸 것에 대한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특허제도와 달리 창의적 표현활동을 장려함으로써 문화의 질적 향상과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데 근본 목적이 있다. 그럼에도 ‘표절’과 ‘저작권 침해’를 둘러싼 시비가 끊이지 않는 우리 현실을 돌아볼 때, 오늘날 연구의 완결성에 입각한 실용성보다는 부수적인 형식의 엄정성만 강조하는 논문심사 관행, 그리고 각종 학회와 일선학교에서의 형식적인 보고서 제출 및 검사 관행은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 자기책임의 무한성에 입각한 연구 및 창작활동과 올바른 인용조건을 충족시키려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된다는 도덕의식은 남의 글 또한 훔치면 안 된다는 당위성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평범한 진리가 어린 시절부터 우리 국민 모두에게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 그리고 학교와 가정이 적극 나서야 한다. 나아가 이제는 저작권자의 권리 오용과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도 함께 강구되어야 한다. 최근 ‘수업목적 저작물이용 보상금제도’를 놓고 대학과 관련단체 사이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정면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소중한 정신유산 함께 가꿔야

근대 이론과학의 선구자 아이작 뉴턴은 “내가 이 세상을 멀리 볼 수 있는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난쟁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준엄한 경고다. 저작권은 곧 문화다. 우리 모두가 함께 가꾸고 지켜야 할 정신유산의 총체가 바로 우리 문화임을 안다면 건강한 저작권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야말로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김기태 세명대 교수 미디어창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