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지방] 혁명의 조건

입력 2012-08-05 20:13


다마스쿠스와 알레포의 한낮 날씨는 섭씨 36도. 모기도 지쳐 날지 않을 것 같은 거리. 옅은 베이지색 담벼락 사이에 탱크가 서 있다. 포탑이 돌아간다.

쿵! 쿵! 포탄이 떨어지는 곳마다 연기가 솟는다. 가끔 총소리가 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조용하다. 뙤약볕은 뜨겁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이렇게 오늘 또 죽어간 사람이 적으면 40명, 많으면 수백 명.

몇 개월째 이어지는 시리아의 내전. 과연 국민일보 독자 중 몇 명이나 시리아 사태에 관심이 있을까. 관심 있는 사람이 적다면 오늘 또 시리아 기사를 써야 할까. 독자들을 탓하고 싶은 것은 전혀 아니다. 솔직히 나도 국제부 기자가 아니었다면 시리아 기사를 얼마나 읽었을까 싶다. 5일 현재 인터넷 포털의 국제뉴스 1위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해외에서 돌풍’이다.

혁명이란 그런 것이다. 승리를 하면 모두 고개를 숙이겠지만 그 전까지는 무관심 속에서 피를 흘리며 외롭게 싸울 뿐이다.

일본 만화가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그린 만화판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읽으며 시리아를 생각했다. 요코야마가 사마천의 책을 빌려 강조하는 역성혁명의 성공 조건은 까다롭다.

춘추전국 혼란의 시기에 군주들은 백성을 먹이고 군인을 훈련시키며 전쟁을 준비한다. 적이 강할 때는 고개를 숙이고 화친을 청한다. 공격을 맘먹으면 먼저 적의 내부를 혼란시키고 적의 적과 손을 잡아둔다. 전쟁에 임해서는 자존심이나 허세가 필요 없다. 군사(軍師)의 말에 귀를 기울여 정세를 냉철하게 판단한다. 작은 승리에 도취해 이익을 독점하지 않는다. 패자에겐 관용을 베풀고 예전의 부조리는 바로잡아 천하의 마음을 얻는 것이 전투의 승리보다 더 중요하다.

시리아 상황에서 아쉬운 것은 중국과 러시아가 여전히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쪽에 더 기울어 있다는 점이다. 반군세력은 미국과 아랍연맹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아사드 정권의 기반을 흔들 만한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반군이 포로로 잡은 정부군 병사들을 공개처형하는 장면도 끔찍하다. 시리아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간결성·사회성·문제해결 능력 3가지를 혁명의 조건으로 꼽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E=mc얬이라는 간결한 식, 원자력의 발견이라는 사회적 필요성, 뉴턴의 이론으로 설명하지 못한 자연 현상을 해석하는 능력을 갖췄기에 패러다임 혁명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시리아에선 독재에 맞선 민주화 운동이라는 단순한 대립구도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헤즈볼라와 알카에다, 시아파와 수니파, 옛 사회주의권과 서방이 얽히고설켰다. 반군세력이 과연 시리아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가치관이나 능력을 갖췄는지 아직 입증된 바 없다.

근대 유럽 혁명을 연구한 학자들이 함께 쓴 책 ‘혁명의 탄생’은 혁명의 운명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해방적인 이념과 함께 거리의 정치가 보여주는 역동성과 창의성을 강조한다. 시리아에서도 13세 소년 함자 알카티브의 죽음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알려지면서 반정부 운동에 불이 붙었다. 과연 이들은 1년 넘게 이어지는 내전 상황에서도 조직화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저런 변수를 따져 봐도 시리아 문제의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세계인들이 서쪽으로 4570㎞ 떨어진 런던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더 열중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김지방 국제부 차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