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과서 정치중립 기준도 백년 보고 만들어야
입력 2012-08-05 20:13
교육과학기술부가 5일 교과서 검정기준 개선을 위한 정책연구를 시작하기로 했다. 교과서에 게재되는 글을 선정할 때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 특히 현존 인물의 작품을 어떻게 처리할지 등에 대해 중점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다. 최근 민주통합당 도종환 의원의 시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소재로 한 글 등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과 관련해 논란이 일자 근본적인 대책을 찾기 위한 것이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을 바라보고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이고, 교과서는 그 백년대계의 핵심적 매체 역할을 하는 만큼 교과서 게재 여부를 판단할 기준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든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동안 정권의 좌우 스펙트럼에 따라 초·중·고교 교과서의 역사에 관한 기술이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 등이 왜곡됐다는 논란이 여러 차례 벌어졌던 사실을 감안하면 오히려 차제에 제대로 논의를 해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다만 교육이나 교과서가 현실 정치에 휘둘리거나 휘말려서는 안 되듯 교육이나 교과서의 중립성 기준을 만드는 일에도 당연히 정치색이 배제돼야 한다는 대원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달 도 의원 작품의 교과서 게재를 문제 삼았다가 곧바로 백지화하고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유감을 표시한 것은 시비를 걸고 나온 자체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저자가 야당 정치인이 되기 훨씬 전에 창작했고 이미 문학적 평가와 검증이 끝난 작품인데 새삼스레 시비를 걸고 나오는 바람에 그 의도의 정치 중립성이 의심받았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교과부는 정책 용역을 외부 기관에 맡기고 공청회와 각계 의견수렴을 충분히 거쳐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최종 결론을 내리는 시점도 연말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로 잡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가 현행 교과서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는 자체가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당국이 인위적으로 교과서 기준을 설정하려 들면 정치적 시빗거리가 되기 십상이며 ‘긁어 부스럼 만들기’ 격이 되기 쉽다.
따라서 교과서 검증 기준에 관한 문제를 안이하게 결론 내리려 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광범위하고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길고 깊은 안목의 공감대를 도출하는 데 주안점을 둬야 마땅하다. 섣부르게 결론을 내리려 하거나 설익은 결과물을 내놓는 것은 애초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된다. 그저 교과서 왜곡 논란의 또 한 페이지를 기록할 뿐이며, 문제를 정리하기보다 국민 혼선을 부추기고 미래 국가의 동량들에게 가치관의 혼란만 심어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