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특사 아난의 좌절
입력 2012-08-03 21:01
시리아 내전 종식을 중재하기 위해 6개월간 동분서주했던 코피 아난 유엔·아랍연맹(AL) 공동 시리아 특사가 결국 사임 의사를 밝혔다. 사실상 최후의 외교해법으로 평가받았던 그의 실패와 좌절은 국제사회의 분열과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내전의 심각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전임 유엔 사무총장의 중재안은 왜 실패했나=아난 특사는 2일(현지시간) 제네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지하고 목적의식을 가진, 하나 된 국제사회의 압력 없이는 나뿐만 아니라 누구도 시리아 정부를 물러나게 할 수 없고 야권이 정치적 과정을 밟게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이달 말 물러나는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겨냥해 “시리아 국민들이 필사적으로 (유엔의) 행동을 요구할 때 안보리에서는 손가락질과 욕설만 난무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2월부터 중재 역할을 맡은 아난 특사는 시리아 병력과 중화기 철수, 과도정부 수립 등의 내용을 담은 6개 항목의 중재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이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퇴진에 반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별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그가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는 동안 시리아 내전 희생자는 2만명을 넘어섰다. 러시아와 중국 정부는 아사드가 물러나겠다고 하자 유감을 표명하며 “그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혀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국제사회의 논의가 공전되면서 내전은 점점 악화됐다.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정치적 해법보다 복수와 증오의 골이 깊게 자리잡은 것도 그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아난 특사의 사임으로 유엔 시리아 감시단의 활동도 불투명해졌다. 안보리 순회의장국인 프랑스의 제라르 아로 유엔 주재 대사는 이날 “안보리 내에서 합의가 어려워 감시단 임무는 (종료 예정일인) 19일에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3일 유엔총회에서의 시리아 결의안 표결도 실질적인 효력을 갖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현직 유엔 사무총장은 어디에=아난 특사의 사임 이후 국제분쟁 해결사로서 유엔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직 사무총장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반면 현직 사무총장은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17개월간 이어졌음에도 시리아를 한 차례도 방문하지 않는 등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에르베 라두스 유엔 평화유지군 사무차장을 파견하고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우려 성명을 발표하는 정도다. 이번에도 아난 특사 사임 후 안보리 비난 성명만 내놨다.
이는 반기문 총장 특유의 ‘조용한 외교’ 스타일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외신들은 반 총장 취임 이후 기후변화나 식량위기 대처능력은 높이 평가하지만 국제분쟁에 대한 대처에는 낮은 점수를 주고 있다. 아난 특사가 총장 재임 시절인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유엔헌장 위반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수단 다르푸르 학살 이후 현장을 직접 방문한 사례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