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이순신-⑤ 화합의 수단] 마시되 입술만 적셔라

입력 2012-08-03 19:30


휴가철이다. 곳곳에 술 취해 비틀거리고 밤새 괴성을 지르는 사람들이 넘친다. ‘난중일기’에도 이순신이 부하나 동료들과 자주 술 마시는 모습이 나온다. 극히 예외적이지만 영웅 이순신도 보통사람과 같았다. 술에 취해 밤새 토하고(1594년 7월 25일), 엎어지고(1596년 3월 5일), 다음날까지 술이 깨지 않아 방 밖을 나가지 못하기도(1594년 9월 13일) 했다.

그러나 대부분 퇴계 이황처럼 절제했다. 퇴계는 젊은시절 사냥을 하며 놀다가 술에 취해 말에서 떨어졌다. 그후 반성하고 지나친 음주를 삼갔다. 이순신도 같이 마신 사람들과 달리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다음날 일에 지장을 줄 정도로 마시지 않았다.

반면 술자리가 만드는 긍정적 효과는 적극 활용했다. 넬슨 제독이 소수의 장교들과 친목 도모를 위해 자주 회식을 했다면, 이순신은 대상도 아주 넓었고 목적도 크게 달랐다. 첫째는 병법서에 나오는 사기고양 수단이었다. 어떤 장수가 막걸리 한 통을 강물에 붓고는 군사들과 함께 마셨다. 강물에서 술맛이 날 리 없지만 군사들은 감격했고, 목숨을 다해 싸웠다. 감동을 마시게 했다. 둘째는 맺힌 한을 풀어주는 묘약이었다. 한치 앞이 안 보이고, 비명과 비탄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군사와 백성의 고통을 치유하고 마음을 모으는 도구였다. 셋째는 집단지혜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술자리는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허황하거나 과장된 이야기가 넘친다. 그러나 경청하고 들어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기 때문이다.

때로 엄청난 규모의 술자리도 만들었다. 도체찰사 이원익이 한산도 진중을 시찰했을 때는 군사 5480명, 명나라 장수 진린이 왔을 때는 명 수군 5000여명을 흠뻑 취하게 만들었다. 군량이 부족해 늘 굶주리면서도 비축한 식량과 술로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이순신의 아낌없는 배려, 성심의 노력이 이원익과 진린을 감복시켰고, 명나라 수군도 복종하고 목숨 걸고 싸울 수 있게 만들었다.

이순신은 어떤 술을 마셨을까. 확인 가능하고 오늘날에도 마실 수 있는 술은 가을 이슬을 받아 담근 추로주(秋露酒), 발효 중인 곡주에 소주를 섞어 다시 발효시킨 과하주(過夏酒)가 있다. 정약용은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고,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술자리가 필요하다면 이순신이 술을 마셨던 목적을 생각하면서 추로주나 과하주로 입술을 살짝 적시는 정도면 어떨까.

박종평 역사비평가